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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10. 댐즐과의 작별 인사


언제부터인지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댐즐’(오토릭샤 이름)을 지나치는 차량이 증가했다. 화물차도 점점 많아졌다. 도로가 넓어졌고, 차들은 이를 만끽이나 하듯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리고 잠깐 새 풍겨 오는 악취. 오직 댐즐을 등록시켜 보겠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전혀 탐탁지 않은 델리까지의 여정이었다.

 

◆‘고생 끝에 낙’은 없었다

델리 시내 주행도 만만치 않았다. 틈만 있으면 오토릭샤(이하 ‘릭샤’)와 오토바이가 끼어들었다. 상세지도를 틈틈이 참고하며 길을 찾았건만 전혀 엉뚱한 시점에 나타나는 샛길들에는 대책이 없다. 그런데 도로 안내판도 제대로 없다. 때문에 차를 돌리기도 수십 번이었다. 그러나 이미 900여 ㎞를 달리며 쌓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 덕에 쫄지 않고 운전을 계속했다는 거. 리아도 놀라는 눈치. ㅎㅎㅎ.

이렇게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며 델리에 재입성한 우리는 사흘 뒤인 화요일 담당자를 만났다.
(왜 사흘 뒤인지 설명을 하자면, 일단 토요일 도착해 카우치서핑 couchsurfing @잘 사는 인도남, 일요일 그의 친구들 만나서 오후에 악샤르담 Akshardham 사원 구경, 월요일 전화하니 병가 중이라는 대답. 그래서 화요일 오후가 된 거다)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한 그 담당자는 업무 담당자인 부하 직원과 상의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상주 주소지가 없는 외국인’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규범집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답은 없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운용하는 상용차는 무조건 CNG/LPG를 이용해야 한다’는 법규만 확인했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댐즐을 델리에서 등록한다는 것은 원척적으로 불가능했던 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시등록증 만기일도 하루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 이런 붕어빵 답변을 듣기 위해 좁은 차 안에서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먼 거리를 달려 왔던가!
(이리 되니 진짜 돈이라도 써서 해결을 하고 싶은데, 얘들 "국제대회-영연방대회를 말함- 앞두고 뇌물수수는 절대 불가"라고 적극 부인한다. 아무래도 내가 기자 출신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우리를 델리로 부른 담당자는 확실하지도 않은 말로 우리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 아닌가?)

 

◆다시 기회가 오는가 싶었으나

인도인 친구들은 이 소식에 하나 같이 “아니다. 여기는 인도이다. 분명히 방법이 있다”며 포기 상태인 우리보다 더 열을 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한 인도인 친구가 ‘알고 지내는 사이’라며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 수렌더(Surender)라는 사람으로 그는 우리에게 “가능할 것 같다. 내가 길을 알아보겠다”며 안심시켰다. 손님인 우리를 위해 따로 수고비는 받지 않는다는 수렌더,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수렌더의 노력도 큰 성과는 없었다. ▶타인 명의 등록 이후 대여 형식으로 사용 ▶법원에 정식으로 소 제기, 2가지 안 가운데 전자를 택해 처리를 했지만 최후의 해결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차량 구매 서류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야간버스로 11시간을 달려 만디(Mandi)까지 갔다 오는 강행군을 했음에도 말이다.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다시 장애물이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델리에서 체류 기간은 어느덧 1개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인도 비자가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 리아(아내)와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댐즐을 처리하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여전히 등록을 마친 뒤에나 가능한 일. 우리는 각종 조건을 따져본 뒤 수렌더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일단 델리를 떠나기로 했다. ‘인도인은 믿을 수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 동안 수렌더가 보여준 선의를 믿기로 하고 말이다.

(가능하면 델리 뜨기 전 팔아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지만, 우리의 상황 때문에 좋은 값을 받기 힘들었다. 대부분 50% 이하 가격을 제시했다. 그래도 그때 팔았어야 했을까?)



과연 언제나 해결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수렌더는 그래도 항상 그랬듯이 “걱정하지 마라. 곧 해결하고 좋은 가격에 팔아 주겠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 가는 곳마다 시선을 끈 댐즐. 이제 와서 보니 작별 사진이 없다.


 

◆아쉽지만 소중한 기억들

현재 시점에도 오토릭샤 등록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곧 해결될 것 같다’는 소식이 한두 번 들렸을 뿐 ‘됐다’는 답은 아직 못 받고 있다. 이제 그냥 ‘버린 자식’처럼 기억에서 일단 젖혀 놓은 채 살고 있다. 생각하면 분명 아쉽고 아까운 시간들. 하지만 델리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기에 이는 어느 정도 상쇄가 된다.

수렌더는 변호사로 우리의 문제를 처리해 주는 입장이면서도 우리를 자신의 ‘손님’(인도에서 ‘손님은 곧 신’)으로 대했다. 휴게실로 쓰는 공간을 우리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줬다.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는 것은 물론 가족과 친척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줬다. 친구들과의 대화 자리에도 우리를 끼워주웠다. 자신의 출장 업무에도 대동, 델리의 법원 구경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아그라(Agra)의 타지마할(Taj Mahal)까지 운전사를 자청했다.

- 수렌더 부부와 함께.



- 수렌더의 지인 Mr. Mann네 집에서. 오른쪽 2명이 아들.



- 다른 수렌더 가족과 함께.



- 타지 마할(Taj Mahal) 관광에 기사를 자청한 수렌더(오른쪽)와 친구 우메시(Umesh). 매표소 앞에서 경호원 행세를 한 자세가 제법 풍긴다.



소탈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성격에 인도 사회의 실상에 대한 정직한 의견도 들려주었다. 자신은 10여년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버리고 부모의 뜻에 따라 난생 처음 본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후배들은 더 나은 결정을 할 것이라는 생각, 변호사들의 업무 중에 하나가 담당 공무원과 뇌물 수준을 협의하는 것이라는 얘기, 담당 부서간 소통이 전혀 안 돼 도로관리나 위생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 등 인도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경청했다. 인도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수렌더의 결혼 사례는 인도에서 매우 흔한 경우. 수렌더는 그 때문에 결혼 이후 철저히 금욕 생활을 하고 있단다. 술도 끊었고, 대부분의 사교 생활도 접었다. 그리고 철저히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인도의 부패 얘기를 하자면, 특정 사건 내지 민원을 해결하는데 공무원들이 뇌물을 요구한다. 그러면 변호사들이 중간에서 금액 협상을 한다.
 부서간 소통, 도로 관리 부서와 쓰레기 관리 부서, 가로수 관리 부서 등이 제 각자 업무를 처리한다. 도로에 쓰레기가 많아도 담당 부서가 치우지 않으면 그만, 쓰레기를 치워도 도로 중앙분리대 가로수 사이에 끼워 놓고, 가로수 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다시 도로 위로 던져 버린다.
 지역 개발용 토지 획득 과정 사례를 더 예로 들면, 인도의 토지 보상 규정은 수십 년 된 것이라 1차 보상금은 택도 없는 수준. 이에 토지주들은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송은 또 수년이 걸리는데, 결국 추가 보상 결정이 내려지는 분위기다. 그 과정에서 낭비되는 인력과 자본, 시간은 대체 얼마인지...) 

카우치 서핑(Couchsurfing)을 하며 알게 된 가우탐(Gautam)과 푸자(Pooja)를 통해서는 인도 상류층들의 생활을 잠깐 엿보는 기회[각주:1][각주:2][각주:3]도 생겼다. 수년째 개인교습을 하며 인도에서 살고 있다는 한국인 여성을 통해서는 인도인과 전혀 섞이지 않는 것을 자랑한다는 일부 교민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각주:4]에 대해 듣기도 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도의 성장세[각주:5]를 목격한 것도 인상에 남는다.

- 델리에서 우연히 참석하게 된 부자들의 생일 파티. 하루 벌이에도 급급한 빈곤층과 달리 이들은 고급 식당에서 파티를 하며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 가난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집도 없이 고가로 밑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 델리에서 한 달간 머물며 인도의 발전상을 목격했다. 인도 남부 네루 플레이스(Nehru Place) 지역의 복합상영관.

- 인도 북부 피탐푸라(Pitampura) 지역에 들어선 쇼핑몰.


이쯤 되면 두 달간의 ‘오토릭샤 여정’은 반쯤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릭샤 덕에 얻어 마신 공짜 ‘짜이(Chai. 인도식 밀크티)’도 빼놓을 수 없겠다.

octocho@gmail.com

octocho.tistory.com


  1. 델리 곳곳에 비싼 동네가 있는데, 이날 간 사켓(Sacket)은 특히 유명한 곳. 먹고 마시고 춤추기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인데, 웬만한 인도인들은 찾기 쉽지 않은 가격대의 식당이다. [본문으로]
  2. 인도 빈곤층은 부지기수, 인구 고려하면 수억명은 되지 않을까? 근데 백만장자가 100만명(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 -.-;)이 넘는단다. 가우탐이 사는 지역이 부자 동네 빌라촌인데, 그의 집은 방만 3개이다. 일꾼 2명이 집 관리를 한다. [본문으로]
  3. 푸자는 부잣집 딸내미 출신. 자유여행 상품을 설계해 판매한다. 본인 입으로 "아버지가 부자"라고 말을 하는데, 부유한 집안 출신 분위기가 그냥 풍긴다. [본문으로]
  4. 그렇게 산다고 한다. 만나서 차 마시고 골프 치고 뭐 그런...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아주 자랑삼아서 얘기한단다. [본문으로]
  5. 델리 곳곳에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형 쇼핑단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직도 인도를 못 사는 나라로만 알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