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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9. 아, 멀고도 험한 릭샤 등록의 길

(지금 살펴보니 9회분을 안 올렸군요. 이제야 올립니다)

“만디(Mandi)에서는 불가능하니 쉼라(Shimla)로 가라.”

“쉼라에서는 안 되니 델리(Delhi)에서 알아보라.”

‘민원 뺑뺑이’.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오토릭샤 ‘댐즐(Damsel)’을 등록하기 위한 과정이 꼭 이랬다. 여기서 묻고 저기서 알아본 뒤 델리의 최상급 부서까지 연락이 닿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인도 북부의 광활한 땅을 달리며 온갖 수단을 강구해 봤지만 굳게 닫힌 인도 정부의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인도의 도로에 오르다

이런 조짐은 아예 첫 단계부터 시작이 됐다. 오토릭샤(이하 ‘릭샤’)를 구입한 만디의 자동차등록사무소(RTO)에 갔더니 “외국인 여행객은 등록할 수 없다”고 했다. 등록에 필요한 거주지 주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보험사 직원도 인맥을 동원해 수소문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담당 직원의 권유대로 주도(州都)인 쉼라에 있는 상급기관을 찾기로 했다. 릭샤 운전 연습 1시간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쉼라까지는 아름다운 산길이었는데, 막상 쉼라에 가까워지자 길 사정[각주:1]이 말이 아니었다. 산악이라 그런지 도로 너비가 그리 넓지 않았는데, 그마저 곳곳의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덜컹거리는 릭샤 차체의 진동을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달려야만 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오토바이 조종간 같은 핸들을 단 3륜차를 운전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물론, 3륜 소형 차량임에도 디젤 엔진을 장착한 관계로 단점도 많았다. 소음이 많고 진동도 심한 편이라 운전 뒤에는 꼭 귀가 멍멍했다. 최고 속력이라고 해봐야 50㎞/h가 안 나오니 웬만한 차량은 모두 양보의 대상이었다. 차체가 작아서 항상 고개를 살짝 숙인채 운전을 하다 보니 뒷목이 뻐근한 것[각주:2]도 문제였다.

 

◆생길 듯 사라져 버리는 희망

쉼라에 도착한 지 사흘째 RTO 주(州) 사무소를 방문했다. 경매꾼들처럼 몰린 등록대행업자 틈바구니를 뚫고 간신히 직원과 상의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대신 “상급자와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부소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불가능하다. 델리의 상급 부서와 얘기해 보라”였다.

집사람은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어렵다’[각주:3]는 말을 되풀이했다. 인도의 현실을 잘 반영한 표현인데, 알고 보면 조금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제도는 있지만 맹점이 많은 만큼 뭐든지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뇌물이 오고가야 하다 보니 쉽지만은 않다’ 뭐 이런…. 우리도 절망적인 심정에 돈이라도 써서 등록에 욕심을 내볼까도 했지만 담당자들은 극구 반대였다. 아무래도 내가 ‘기자 출신’임을 밝힌 것 때문이 아닐까[각주:4]도 싶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남은 길은 델리로 가는 것 말고는 없었다. 연락처를 얻어 직접 통화를 시도했다. 꽤 상급자(우리로 치면 국토해양부 교통정책관 비서 정도)로 보이는 이 담당자는 우리의 설명을 한참 듣고 나더니 “쉼라에서 가능하지 싶은데 다시 한 번 얘기해 보라”고 했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두 번째 통화에서야 상황을 인식한 이 상급자는 “델리로 와서 한 번 상의해 보자”고 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델리, 우리는 이렇게 전혀 엉뚱한 이유로 인해 다시 메가시티인 델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각주:5]


-새로 깐 길이긴 하지만, 이렇게 도로 표지가 지워진 길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도로를 달리는 각종 차들. '무섭게' 달린다.


-오토릭샤에 말 그대로 '올라 탄' 승객들. 이건 약과.


-건축용 크레인 차량 바깥에 올라탄 사람들. 웃고 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가는 일꾼들.


-화물차 뒤쪽 ‘경적을 울리라(HORN PLEASE)’는 표식.


-'경적 금지' 표지는 장식에 불과하다.


 

◆인도의 도로 환경 체험

쉼라에서 델리는 승용차로 달리면 8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릭샤, 그것도 사람 2명에 무거운 짐까지 가득한 상태에서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가능한 임무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구경꺼리까지 챙기는 통에 우리는 사흘 만에 델리 재입성에 성공했다.

델리에 이르는 동안 약 900㎞를 달리며 인도의 도로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먼저, 인도의 도로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대도시, 간선도로가 아니고서는 2차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길을 릭샤는 물론 승용차나 트럭, 버스에 오토바이, 자전거, 우차(牛車)까지 달렸다.

상태가 엉망인 곳도 많았다. 인도인들에게 들으니 우기에 쏟아지는 비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량은 무질서하기만 하다. 쏟아지는 차량 행렬 속에 교통 규칙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도로 사정이 좋아도 다를 바 없었다. 찬디가르(Chandigarh)에 갔을 때였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설계로 네모 반듯하게 구획 정리한 도시가 인상적이었다. 도로도 기본 왕복 4차로에 차선마저 선명하고 신호등 옆에는 디지털 시계까지 갖췄다. 그러나 교차로 통행은 엉망이었다.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라고 불리는 원형 교차로에서의 운행은 완전 곡예 수준이라 초행길인 나로서는 적응하기 매우 어려웠다. ‘혹시나’ 싶어 조심 운전을 했지만 ‘역시나’ 차선 합류 지점에서 가볍게 추돌 사고가 나고야 말았다. 큰 도로에서 차가 다가오는 데도 무리해서 진입한 승용차 때문이었다. 외국인인데다 임시 등록 상황에서 운전을 하는 나였기에 긴장되는 상황. 역시나 사고를 낸 운전자는 마치 내가 잘못한 마냥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각주:6]으로 차에서 내리더니 힌디어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현장을 목격한 인도인들이 내 편을 들어줘 각자 해결하는 선에서 결론을 냈다. 다시 한 번 인도인 ‘지니’의 도움으로 난관을 벗어난 셈이다.

끝으로, 인도에서는 차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차량 종류는 상관이 없다. 화물차나 버스는 아예 앞뒤로 ‘경적을 울리라’는 뜻의 ‘BLOW HORN’ 또는 ‘HORN PLEASE’란 문구를 그려놓고 다닌다. 누군가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귀가 먹을 만큼 세게, 하루 종일 울려대는 통에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 만큼 뭔가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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