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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8. 오토릭샤 찾아 삼만리

“오토릭샤(Autorickshaw)를 사서 타고 다니자.”

우리의 인도 여행 2단계는 이렇게 엉뚱한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진 어느 날 밤. 평소 잘 안 타던 릭샤를 타고 귀가했는데 리아가 갑자기 이런 제안을 했다. ‘릭샤를 타고 인도 전역을 돌면서 자신은 차체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매우 특이한 경험이다 싶어 “그러자”고 답변을 했다.

   

 
  


- 각양각색의 인도 오토릭샤.

  

   


 

◆릭샤 찾아 새로 시작한 여정

먼저,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수소문했다. 릭샤 기사에게 물으니 ‘만디(Mandi. 힌두어로 ‘시장’을 뜻한다)로 가라’고 했다. 다행이 맥클러드 간즈에서 하루 만에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인터넷도 뒤졌다. 긍정적인 정보가 있었다. 남인도 첸나이(Chennai)에서 외국인들이 참가하는 오토릭샤 경주가 해마다 개최된다는 내용이었다. 대회 후에는 이 릭샤를 개조해 중고로 판다고 하니 우리 계획이 전혀 엉뚱한 생각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황당무계하다’는 표정 내지 ‘기가 차다’는 웃음으로 대했다.

6월 24일, 희망을 품은 우리는 드디어 정든 맥간을 떴다. 인도에 발을 들인 지 거의 2개월 만이다 보니 처음 여행을 떠날 때처럼 기분이 설렜다. 다시 한 번 캉그라(Kangra) 계곡의 수려한 경치를 굽어보며 산길을 도는 장거리 버스 여정. 만원 버스 장거리 여정의 피로는 도중 하루 묵은 팔람푸르(Palampur) 일대 차밭의 싱그런 녹음의 감흥으로 달랬다.

- 팔람푸르의 차밭. 평지처럼 조성돼 있다.


- 저지대로 내려가니 이렇게 논도 보인다.


 

◆고생 끝에야 낙이 오더라

만디는 예부터 사통팔달의 위치에 있어 상업이 발달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식당보다는 상점이 몇 배나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릭샤 판매점은 보이지 않았다. 행인들에게 물으니 누구는 ‘이리로 가라’ 하고 누구는 ‘저리로 가라’ 하니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경찰도 신통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 만디(Mandi). 중심에 형성된 '성큰 가든(Sunken Garden)'. 광장. 서문시장을 닮은 골목길(사진 위부터).



난감해 하는 우리를 보고 몇몇 인도인이 자기들끼리 한참 의논을 하더니 ‘관광정보 안내소에 가보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위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쯤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얘기를 듣고 무작정 걸었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

허탈한 마음에 숙소로 돌아가는데 스쿠터를 탄 인도인 청년 둘이 다가왔다. 아까 길 안내를 해줬던 대학생들이었다. 라테시(Latesh)와 딥(Deep)이라는 두 사람은 사정을 듣고는 의논을 하더니 “릭샤 노조에 가서 물어보라”고 조언을 해줬다.

어차피 숙소로 가는 길이라 그렇게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영어를 못 하는 기사가 많았던데다,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은 릭샤 대리점 위치를 몰랐다. 완전 절망하려는 찰나 뒤쪽에서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만났던 인도 대학생들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다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 쫓아왔다”는 이들은 기사들과 한참 얘기를 하더니 결국 판매점 위치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 결정적인 순간마다 '짠'하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준 '지니' 라테시(Latesh)와 딥(Deep).

두 사람은 전혀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전혀 머뭇거림 없이 할애해 주었다. 리아(아내)는 이런 이들을 ‘지니’(Genie.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라고 불렀다. 새로운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이보다 더 적절한 별명이 어디 있을까! 릭샤를 산 뒤에는 더 많은 ‘지니’가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환상의 지니 커플의 도움으로 드디어(!) 찾게 된 릭샤 대리점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릭샤로 달

- Bajaj사의 오토릭샤 RE 모델을 히마찰 프라데시주 독점 판매하는 글로벌 모터스 구트라(Gutra) 지점과 직원들.

려도 15분쯤 걸리는 외곽이었다. 인도에서 꽤나 큰 릭샤 제조사인 바자즈(Bajaj)사의 차량 판매소 겸 정비소였다.

방문 당시 이곳에는 2대의 릭샤가 전시 중이었다. 1대는 승객 수송용이고 다른 1대는 화물차였다. 그런데 리아는 하필이면 화물차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 귀여운데다 파란색이라 색을 입히기에도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 오토릭샤 화물차. 상당히 앙증맞긴 해도 기능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이 트럭 3륜차[리아는 이미 ‘스피드 화신 댐즐(Damsel, the Speed Demon)’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다] 구매 단계에서도 문제는 있었다. 직원들이 영어를 못 하는 것은 약과였다. (이건 직원들이 사장과 전화 연결을 해줘 쉽게 해결이 됐다.) 정작 큰 난관은 새 차량 구매 뒤 임시 등록용으로 인도 현지 주소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 비자를 보유한 여행객에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를 해결해준 것도 바로 우리의 ‘지니’였다. 라테시라는 친구가 자신의 집주소를 사용하도록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게다가 증빙서류가 필요하다는 말에 직접 대리점까지 찾아와 본인의 운전면허증을 복사해 넘겨주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던 난관을 거듭한 끝에 생각지도 않았던 인도 지니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결국 오토릭샤 구매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파란색 릭샤 트럭과 함께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의 직원들은 물론 지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우리를 마냥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날 이후 며칠간 우리는 댐즐을 타고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기 위해 차량 뒤에 덮개를 씌우고 캠핑 장비를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갔다. 이 날의 선택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역경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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