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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26.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



올해 첫 연재기사에 비엔티안의 한국식당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다는 얘기를 적었다. 매년 연말 이 식당에서 한국인 손님과 식당 직원이 참여하는 행사에 우리가 꼽사리 끼는 형국이었다. 예상을 뛰어넘게 재밌는 송년회의 여흥은 이후 며칠간 이어졌다.

◆한국식으로 새해를 맞다

송년회 마신 술독을 풀러 다음날 아침 느지감치 독참파 식당에 갔다. 김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이날은 휴업. 해마다 송년회 다음날은 쉰다고 했다. 그래도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내준 청국장으로 속을 풀었다. 주방장이 쉰 관계로 전직 주방장 출신인 니트(라오스 여인이자 안주인이다)가 손수 끓여내 왔다. 냄새를 줄인 요즘 방식의 청국장으로,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여 내오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 속이 풀리는 듯했다.

속을 달래고 얘기를 나누는데 김사장이 ‘신년회 겸 저녁 외식’에 초대했다. 우리는 오후에 만나기로 한 캐나다인 콜린(Colin)을 불러 함께 갔다. 돈뎃(Done Det)에서 만난 친구였다. 저녁 시간에 맞춰 독참파를 찾으니 전날 봤던 친숙한 얼굴들이 가득 했다. 12인승 승합차에 우르르 올라타서 식당으로 가는 것이 꼭 한국에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목적지인 ‘씨푸드 뷔페’ 식당에 도착하니 기분이 더 묘했다. 800㎡은 족히 됨직한 넓은 공간에서 바라본 광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차를 타고 삼삼오오 몰려 온 사람들. 식당 안은 이들과 부딪히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바글바글거렸다. 육류에 해산물에 샐러드 거리는 물론 각종 과일까지 푸짐하게 차려진 각종 음식. 말 그대로 ‘산해진미’였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나르고, 화로 위에 고기와 생선을 굽고 술을 마시는 광경. 영락없는 한국이었다. 1천석은 족히 돼 보이던데,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그득했다. 대부분 라오스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비엔티안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계산할 때 1인당 8만킵(약 10달러)을 냈다. 우리 돈 1만원 수준인데, 라오스인들에게는 그리 적지 않은 돈(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니 라오스 최저임금은 현재 월 34만8천킵이다)이었기 때문이다.


◆비엔티안의 한국인들

콥차이더라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2차 모임은 놀라웠다. 부산의 한 사찰에 있다는 스님의 재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자를 위해 양주를 거하게 쏜 이 스님은 첫 병의 마개를 따자마자 반품을 요구했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냄새를 맡더니 ‘가짜 양주’ 판별을 내린 까닭에서였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가짜 술이 판친다는 얘기를 듣긴 들었지만 이런 중고급 식당에서까지 그럴지는 생각도 못했다.

이 스님의 능력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스님은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끝나자 무대로 올라가더니 기타를 둘러멨다. 그리고는 에릭 클랩턴의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을 라이브로 멋지게 불러댔다. 노래가 끝나니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 스님은 또한 스쿠바 다이빙 경력만 1천회가 넘는 강사급. 수중촬영 실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꼭 독참파에서 송년회를 지내고 간다는데, 요즘 시쳇말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 할만하다. 그 다음 날에는 ‘회가 먹고 싶다’는 리아의 청에 연어회를 대접해 주어 여러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2차 자리에 같이 있었던 콜린과 크리스토퍼(Kristopher·덴마크인)도 이러한 모습을 보고는 아주 신기해 마지않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스님들 전부가 저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안 해준 것 같다.



◆특별한 인연을 뒤로 하고


독참파 식당의 김사장도 전력이 남다르긴 마찬가지였다. 10여년 전 혈혈단신으로 라오스에 와서는 정착, 식당에 게스트하우스까지 운영하는데 그만한 뒷얘기가 없을까! 식당을 짓는 과정에서는 인부들이 게으름 피우는 것을 강하게 대응하다 유치장 신세까지 졌단다. 거기서는 밥을 개인이 해결(라오스 유치장에선 밥을 주지 않는단다)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 뇌물이 건네진다는 걸 알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국요리를 배우겠다고 들어온 젊은 라오스 여성과 결혼하게 된 과정도 아주 흥미롭게 경청했다.

1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꼬박 3일간의 음주가무(!)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낯선 이들 사이의 벽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짧은 시간 정도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틀 뒤 독참파에서의 인연은 이렇게 뒤로 하고 우리는 태국을 향해 남하했다. 떠나는 날 우리의 점심 메뉴는 바로 독참파의 김밥이었다.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