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24. 비엔티안을 가다



라오스 남부의 중심 도시 팍세(Pakse)에서의 일정은 그렇게 씁쓸한 경험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을 향해 긴 버스 여정에 올랐다. 11시간의 여정이었지만 다행이 침대버스로 밤새 이동하는 까닭에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다.


◆어둠 속 야간버스 여행

팍세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 8시 출발이다. 매일 1대 밖에 일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짐을 챙긴 뒤 버스 탈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다. 인터넷으로 비엔티안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됐다. 이곳까지 들어선 인도 식당을 들렀다. 버스표를 비롯한 관광객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인도를 뜬 지 2개월여 만에 먹는 인도 음식이라 반가웠다. 그러나 확실히 인도 현지 음식에는 못 미치는 맛이 아쉬웠다.

버스 터미널은 한가했던 낮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전국 각지로 떠나는 침대 버스, 그리고 여기에 오르려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이곳에서 안네(Anne)를 만났다. 돈뎃(Don Det)에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네덜란드 친구였다. 우리보다 늦게까지 돈뎃에서 머물렀는데, 팍세 일정이 우리보다 짧다 보니 우연히 또 만나게 됐다. 여행에서 느끼는 뜻밖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버스는 만차였다. 외국인 여행자도 많았으나 라오스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신형으로 상당히 깨끗한 상태의 차량, 그리고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눈에 들어오는 달. 보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둥근 상태의 달이 우리를 동행했다. 나름 운치있는 밤차 여행이었다. 하지만, 피곤한 몸은 어느새 깊은 수면상태로 돌입했다. 오전 1시쯤 들른 휴게소에서의 잠깐 휴식 말고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상태로 수도까지 향했다.



◆조용한 수도의 매력

누군가 몸을 흔들기에 눈을 떴다. 오전 6시 30분. 비엔티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비몽사몽간에 짐을 챙기고 시내행 택시(라고 하지만 픽업트럭을 개조한 차량)에 몸을 실었다. 숙소 잡는 게 급했다. 예약한 곳이 있긴 한데 방이 맘에 안 들었다. 하루만 묵기로 하고는 점심 식사 뒤 다른 숙소를 찾아 헤맸다. 연말 성수기라 그런지 괜찮은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 어떻게 리아가 책임을 맡게 된 카우치서핑(Couchsurfing) 성탄절 모임 장소도 알아봐야 했다. 몸이 피곤해선지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엄청나게 저렸다.

2시간 넘게 헤맨 것 같다. 테라스까지 딸린 방을 잡고 모임 장소까지 예약한 다음 좀 여유를 찾았다. 좀 걷다 보니 숙소 주변 구경은 제대로 한 것 같다. 불교 국가답게 여행자 대상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사이 곳곳에 절이 들어서 있었다. 일식당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기야 요즘엔 세계 어딜 가도 있는 게 일식당 아닌가. 수수한 것부터 화려하게 꾸민 것까지 다양했다. 한식당도 꽤 있었다. 한글 간판에 한글 메뉴로 한국인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남푸(Nam Phu) 분수 일대에는 꽤 고급스런 식당과 바(Bar)가 자리하고 있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외국인과 라오스인이 양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때마침 크리스마스에 연말이라 조명 장식을 해놓아 거리 분위기도 제법 괜찮았다. 남푸 분수 주변에선 타이거맥주가 후원하는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내외국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맥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또 이런저런 행사 구경을 하는 것을 보니 마치 딴 세상 같았다.



◆사람 사는 느낌, 강변 야시장

이에 반해, 메콩 강변 쪽으로 가니 야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강변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노천식당이었다. 500m쯤 되는 거리에 해가 질 무렵이면 식당이 들어선다. 식탁이 10개가 훨씬 넘는 중규모로, 10개 가까이는 된 것 같았다.

가격은 저렴하고 음식 가짓수는 다양, 거기에 맛도 일품. 앉으나 서나 지갑 걱정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안성맞춤의 식당이다. 재밌는 것은 일하는 사람 중에 ‘레이디 보이(Lady Boy)’가 식당마다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남자인데 여성스런 외양과 행동이 누가 봐도 딱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국이야 원래 이런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그래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니 조금 신기했다. 우리를 서빙했던 것도 레이디 보이였는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여자였다. 휴대전화로 리아와는 물론 나와도 사진을 찍었는데, 리아보다는 나한테 더 바짝 붙는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했다.

어쨌든 어둠이 내린 비엔티안의 메콩 강변은 노천식당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오가는 차량 엔진소리가 어우러져 ‘사람 사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주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