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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23. 이상하고 아름다운 요지경 나라






라오스는 아직 저개발 상태에 있다.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 곳곳으로 확장 일로에 있는 베트남은 물론이요, 국내 시장을 조금씩 개방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캄보디아와도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변변찮은 산업 기반도 거의 없고, 관광 인프라 구축 또한 아직 멀었다. 공산당 독재의 잔재 때문인듯도 한데,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친절이 가득한 사람들


라오스의 첫 인상은 매우 좋았다. 입국한 날 저녁 길을 찾는 우리를 차에 태워 속소까지 데려다 준 휴대전화 가게 주인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을 먹었던 식당 사람들도, 이후 술을 마신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좋은 인상을 주긴 마찬가지였다.

동남아시아를 떠도는 배낭족 가운데 라오스를 가장 좋아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사람들이 가장 순수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낯선 이의 인사에 항상 웃음으로 답하고, 먼저 ‘헬로(Hello)’를 외치는 아이들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풍경은 왠지 모를 편안함을 전해주었다.

돈뎃(Don Det)에서 머물 때였다. ATM이 없다는 얘기를 도착하고서야 알게 됐다. 도중에 미국 달러를 환전하긴 했지만 예상 밖의 일정으로 현금이 부족한 상태. (라오스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다) 우리 숙소 주인 마이크는 ‘사람을 한 명 딸려 보낼테니 팍세(Pakse)에 가서 보내면 된다’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시간표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버스 출발과 도착 시간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도로 사정은 물론 자동차나 버스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시판돈을 떠나는 날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

팍세로 가는 버스에 올랐는데 10여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길가에 서 버렸다. 뜨거운 여름 날씨, 승객들은 일단 모두 내렸다. 오른쪽 앞바퀴가 문제였다. 직원이 전화를 했지만 정비팀은 한참 후에나 도착했다. 그새 뙤약볕에서 마냥 기다리는 승객들. 팍세에 도착해 바로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걱정스런 눈초리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댔다.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니 ‘팍세까지 가는 버스가 늦으면 팍스에서 출발하는 버스도 조금 늦게 출발한다’는 것 같았다. 대단한 무한책임 정신(!)이다.



 

◆외국인은 봉이었다

하루는 팍세에서 최악의 경험을 했다. 스쿠터를 빌려 태국 접경지까지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눈앞에 나타났다. 영어는 안 되고 손짓 발짓으로 뭔가를 말하는데 도저히 못 알아먹겠다. 한 10분쯤 듣고 있으니 뭔가 감이 왔다. 조그만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좌회전을 한 기억이. 모르는 척 계속 듣고 있었다. 그러자 경찰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우리더러 따라오라고 했다.

나의 예상은 맞았다. 하필이면 좌회전을 했던 바로 그 사거리에 경찰 초소가 있었던 거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종이에다 벌금 액수를 적어 보여주는데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었다. 순순히 포기하고 돈을 내밀었다. 순간 경찰은 뭔가 놀란 눈치를 보였다. 마치 ‘이렇게 그냥 달라는 대로 주다니!’ 뭐 이런 표정. 영수증은, 없었다. 바로 과외 수입이었던 거다. 그래서 그렇게 악착 같이 쫓아왔던 것일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식으로 외국인에게 벌금을 받아서는 바로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었다.

같은 날 밤. 저녁을 먹고는 밤거리를 둘러본다고 스쿠터 주행 중인데 다리 앞 초소에서 경찰이 앞길을 막아섰다. 잘못한 것이 없었던 상황,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 같아 무조건 따졌다. 그랬더니 한 명이 굳이 사거리까지 끌고 가더니 신호등을 보여줬다.

조그만 신호등엔 좌회전 화살표(←) 표시가 있었다. 초행길에서는 도저히 보기 힘든 위치. ‘몰랐다. 관광객인데 한 번 봐달라’는 항변은 먹히지 않았다. ‘낮에도 걸려서 벌금 물었다’고 애원도 소용 없었다. 결국 전략을 바꿔 벌금을 깎기(!)로 했다. 꿈쩍도 안 하는 경찰을 몇 마디 라오스 말을 섞어 가며 겨우 설득, 돈을 던져주고는 도망치듯 현장을 떠났다. 이번에도 영수증은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주의를 주고 그냥 보내 줄 법도 한데, 참 어처구니가 없는 하루였다. 외국인만 걸리면 용돈이 쏠쏠하니 생기니 라오스 경찰에겐 봉이 아닐 수 없는 모양. 이런 황당한 일을, 그것도 하루에 두 번이나 겪고 나니 외국인에게 관대한 한국이 좋은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싶었다. 라오스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여행지임을 비싼 돈 들여가며 제대로 배운 날이었다.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