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낯설고 신기한 것을 많이 보았다. 아름다운 자연, 멋진 풍광에 빠져 즐거운 한때를 보낸 적도 많았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걸작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러한 거대 문화재가 아니었다.
전제군주의 명에 의해, 대규모 인력이 동원된 거대한 역사(役事)보다 더 인상적인 명소가 있었다. 인도 찬디가르(Chandigarh)의 ‘록 가든(Rock Garden)’과 라오스 비엔티안(Vientiane)의 ‘부처 공원[Buddha Park]’이 그랬다. 지금은 각 도시의 대표적인 구경거리가 됐지만, 두 곳 모두 한 사람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소박하게 시작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경건한 불심 가득한 공원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부처공원. 라오스 말로는 ‘영혼의 도시 절’을 뜻하는 ‘와트 시엥쿠안(Wat Xieng Khouane)’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부처(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힌두교·불교 요소가 섞인 소승불교 관련) 조각상이 설치된 야외공원이다. 요즘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 안에 200여개의 조각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부처공원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동그란 호박 형태의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 시선을 가로막았다. 귀신 형상을 한 출입구, 그 입을 통해서 들어서니 각양각색의 조각상이 들어선 실내가 들어왔다. 3개 층별로 각각 지옥과 현세, 그리고 천국을 형상화했단다. 고통과 환희, 인간이 벌 받고 상을 받는 불교식 세계관을 재현한 조각상의 생생함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 3개의 다른 세계를 구경한 뒤 다시 좁디 좁은 통로를 따라 올라갔다. 건물 옥상이 나왔다. 공원은 물론 그 너머 메콩강, 그리고 강 반대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명당이 따로 없는 셈! 이미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빛이었지만 여전히 따갑긴 마찬가지였다.
부처 공원은 분르아 수리랏(Bunleua Sulilat)이란 승려이자 무당이 1958년부터 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을 통합해 아주 독특한 시설을 만들어냈다. 공원화한 건 1975년 공산혁명 이후라고 한다.
120m의 거대한 와불을 비롯한 불교 관련 조각, 그리고 시바나 비슈누 등 힌두교 관련 조각이 혼재해 있는 것이 그렇게 낯설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인도를 거쳐 힌두교 영향을 받은 인도차이나 지역을 다닌 후 들른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불교도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개인의 힘이 일궈낸 경이
부처 공원에 들렀을 때 생각난 것이 바로 찬디가르에서 들렀던 록 가든이다. 8만여㎡의 거대한 예술공원으로 성장한 이 공원은 넥 찬드 사이니(Nek Chand Saini)라는 아마추어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이 됐다.
1947년 가족과 함께 찬디가르로 이주한 그는 도로 검사관으로 일하는 틈틈이 주변 공사 현장에서 재료를 수집했다. 당시 찬디가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뒤 인도 최초의 계획도시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사기 조각이나 전선, 콘센트 등을 모은 그는 이를 재활용, 예술품으로 변모시켰다. 수백개의 자그마한 파편은 그의 손을 통해 사람이 되고 동물로 탄생했다. 18년간 아무도 모르게, 오로지 혼자 힘으로 ‘쓰레기 예술품’으로 가득 채운 넥 찬드만의 공간은 1975년 관계 당국에 의해 발견 당시 이미 약 4만9천㎡의 예술공원으로 변신해 있었다.
삼림 완충지로 보존 구역인 탓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었다. 몇 번의 고비 끝에 그의 생각을 공감하는 여론 덕에 넥 찬드의 록 가든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찬디가르 최고의 명소로 성장했다.
‘인도 최초의 계획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찬디가르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구획 정리가 네모 반듯하게 돼 있다. 도로와 주택, 가로수까지 모두 계산해 짓다 보니 왠지 삭막한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찬디가르이다. 이런 도시에서 록 가든은 찬디가르 시민의 휴식처로서 손색이 없는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록 가든이나 부처 공원,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시각을 행동으로 실천한 ‘작은 거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작은 거인이 더 많다면 각박한 도시생활에 큰 활력소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octo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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