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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7. 허겁지겁 라오스 가는 길

 


해외 여행 중 국경을 넘을 때만큼 정보가 중요할 때가 없다. 어영부영 다니다가는 사기[각주:1]를 당할 수도 있다. 아니라면 적어도 경비나 시간 측면에서 여러 모로 손해를 보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나짱(Nha Trang)에서 라오스로 넘어갈 때가 꼭 그랬다.



◆베트남 안전 출국 대작전

12월 8일. 베트남 비자 만료 이틀 전날. 베트남을 어떻게든 떠야 할 때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여행사에 가서 베트남 중부 훼(Hue)까지 가는 버스편을 알아봤다. 라오스로 넘어가는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문제가 생겼다. 여행사 직원 얘기를 들으니 훼에 도착해서 월경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계산 착오였다. 빈펄랜드에 가볼 거라고 맑은 날을 기다리다가 어이없는 상황에 빠졌다.

급해진 마음. 여행 책자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런데, 30분, 1시간을 뒤졌는데 마땅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각주:2] 다시 여행 책자 안의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베트남-라오스 간 월경 지점은 3군데. 그 중 최남단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느억호이(Ngoc Hoi)라는 곳에서 보이(Bo Y)라는 곳으로 넘어가는 여정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버스편을 알아봐 달라고 한 뒤 다시 인터넷을 살폈다. 그냥 ‘이런 방법이 있다’ 정도의 설명뿐, 자세한 내용은 통 찾을 수가 없었다. 머리는 점점 열을 받고 배가 슬슬 고파지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순간, 호텔 직원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플레이쿠(Pleiku)라는 곳까지 가면 국경을 넘는 버스가 있다는 거였다. 와, 오전 내내 그리고 이른 오후 시간까지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던 큰 근심거리가 단방에 해결된 거다. 그대로 터미널로 간 우리는 이튿날 아침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불러왔던 물놀이를 하러 갈 수 있었다. 이미 오후 2시가 훌쩍 지난 뒤였다.

 

◆1단계, 플레이쿠 가는 길

이튿날 아침. 라오스로 가기 위한 1단계 여정에 올랐다. 짐을 가득 실은 플레이쿠행 미니 밴을 타고.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지역은 대부분 산간 지역. 산간 도로를 달리다 보니 선선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바람과 함께 지나치는 녹음(綠陰)이 꽤나 멋스러웠다. 후추 농장도 보이고 대규모 고로쇠 채취 장면도 보였다. 이런 길을 쉬엄쉬엄 6시간 넘게 달려 플레이쿠에 도착했다.


-좁아서 그렇지 승차감은 나쁘지 않았다는...



-한편, 옆차에는 베트남인들의 대중 이동수단 스쿠터를 싣는다고 한창. 그 옆에선 배 채우고 수다 떤다고 한창.



 

남베트남 산간 지역의 자연 풍경.

후추 농장도 많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쳐다 본 하늘. 우리나라 가을처럼 새파랬다. 그리고 떠 있는 하얀 구름. 언제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이다. 나짱의 흐린 날에 대한 기억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본 것과는 달리 깔끔한 외양의 건물도 플레이쿠의 첫 인상을 거들었다. 다음날 일찍 다시 여정에 올라야 했기에 바로 호텔을 잡았다. 미니밴에서 만난 베트남인[각주:3]의 도움으로 찾은 곳이다.


-플레이쿠의 버스 터미널. 파란 하늘빛이 눈에 띈다.




베트남 갸라이(Gia Lai)성의 성도인 플레이쿠는 최대 기업 중 하나인 호앙 안 갸라이 그룹(Hoang Anh Gia Lai. 같은 이름의 축구 팀 구단주이기도 하다)[각주:4]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라오스는 물론 캄보디아와도 가깝다 보니 무역이 발달한 모양. 그래서 출장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도 많은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이 호텔 로비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벽걸이 TV에 때마침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성우가 더빙을 했는데, 가만 보니 목소리가 하나뿐이었다. 여자 성우 한 명이 여자는 물론 남자 배우 역을 모두 맡아서 녹음을 한 듯했다. 그것도 무미건조하게 말이다.[각주:5]

 

◆화물`승객으로 꽉 찬 버스

어쨌든, 이튿날 아침 전날 약속한 것보다 높은 방값을 부르는 직원에게 따져 겨우 약정 가격을 지불[각주:6]하고는 터미널로 향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라오스 가는 길.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좌석에 한글 낙서가 생생히(?) 남아있는 한국산 중고 차량.

근데, 뭔가 불쾌한 냄새가 났다. 버스 실내 뒤쪽 공간을 채운 각종 화물에서 나는 것이었다. 각종 박스는 물론이고 고무 호스에, 나중에는 보니 중장비용 타이어[각주:7]까지 있었다. 기름내도 섞인 듯했다. 여행자들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운송하는 이른바 ‘로컬(local) 버스’였다. 라오스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각종 물건을 베트남에서 구입해서는 가지고 가는 것 같았다.[각주:8]


- 저기 어디엔가 1m가 넘는 타이어도 숨어 있다는...



-농산물도 빠지지 않는다.



-보자, 저걸 싣는 중이었던 것 같다.



가는 길 중간 중간 이 물건들을 내리고, 다른 물건을 올리기를 10여 차례 반복하는 것을 지루하고 피곤하게 지켜봤다. 버스 기사는 어느 틈엔가 ‘의천도룡기’와 ‘당산대형’을 틀어 주었다. 역시 아시아는 하나?

octocho@gmail.com

-싱하 형의 분노가 시작되고 있다.

  1. 개인적으로는 큰 탈 없이 잘 지냈는데, 각종 사례를 보니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더라는. [본문으로]
  2. 호텔 직원은 '비자 연장하라'고 하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본문으로]
  3. 민(Minh)이라는 엔지니어.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휴대폰 전자사전 뒤적이면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본문으로]
  4. 정확하진 않은데 EPL의 한 구단 스폰서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일대에 대규모 투자를 한 베트남의 거대 자본이다. [본문으로]
  5. 공산당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본문으로]
  6. 전날 방 잡는 걸 도와 준 베트남인이 18만동이라고 했는데, 대뜸 29만동을 불렀다. 이에 따지자 20만동이 부르고, 더 항의하자 18만동으로. 어이 없다. [본문으로]
  7. 지름이 1m는 족히 넘어 보였다. [본문으로]
  8. 라오스 최대 기업은 '비어 라오'라고 할 정도로 산업 기반 시설은 미미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