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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9. 한가위의 추억




- 인도의 서해안인 바르칼라는 석양이 참 아름답다.





벌써 9월이다. 음력 8월 한가위도 지났다. 지난해 4월 출국 이후 처음 맞는 명절,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작년 이맘때 기록을 들춰 보니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 올랐다.

 

따스한 해변에서의 나날

‘DVD 보려던 약속, 드디어 성공! , 감동이다’. 생뚱맞은 것 같지만 지난해 추석 연휴 다음날 기록의 첫 구절이다. 인도 여행기에서 소개했던 남인도 케랄라(Kerala) 주의 바르칼라(Varkala)란 해안도시에 있을 때였다.
 

DVD란 것이 뭔고 하니, ‘칠 아웃(Chill Out)’이란 식당에서 만난 영국 출신의 스카이 다이버 마이크(Mike)가 우리에게 보여 준다고 한 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What the blip do we know?)’라는 영화. 과학과 삶, 우주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은 리아와 한참 대화를 나눈 마이크가 생각이 나서 보여주기로 한 거다.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과학의 시점으로 풀어낸 내용이라 꽤 흥미진진했다.
 

문제는 이걸 실제로 보는데 열흘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먼저, 영화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야 했고, 또 이를 다운받아야 했다. 느려터진 인터넷 탓에 이것만 이틀이 걸렸다. 다음, 식당에 있는 평면 액정TV usb 메모리 스틱을 꽂았는데 재생이 안 됐다. 주변에 DVD 버너가 없어 결국 마이크가 회사에서 해야 했다. 그 사이 마이크는 출장을 갔다 오고, 결국 시간은 흘러 흘러 이날 결국 보게 된 것이다. 영화 한 편에 참 대단한 정성이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여행기 12회에서 소개한 5명의 친구들이 모두 이 DVD 때문에 인연을 맺었다. DVD를 다 보고 나서 세차게 내린 비가 그치지 모습을 드러낸 눈부신 하늘.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모두들 의기 투합, 바닷가로 우루루 몰려갔다. 따가운 햇살 아래 신나는 물놀이.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칵테일 한 잔. 그리고 이어진 건강식 전문점에서의 샐러드 뷔페. 모든 것이 척척 맞아 돌아간 이날, 서로에게 이보다 더한 절친도 없었던 것 같다.





기록을 읽다보니 그때 보았던 보름달도 기억났다. 칠 아웃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 뜬 보름달은 눈이 부시게 밝았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보름달이 하얀 기운을 머금었던 것 같은데, 표현하자면 하늘에 할로겐 등을 하나 꽂아 놓았달까?[각주:1]




이런 호강(?)도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편 쪽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는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고, 그런만큼 숙소 잡기도 엄청나게 공을 들여야 한다면 어떻게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우메시(Umesh)라는 카페 주인의 말로는 이 때는 좀도둑과 강도에게도 성수기라고 하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숙소에 놔둔 카메라를 도둑 맞는 바람에 수개월 간의 사진 기록을 날려 버린 얘기며, 숙소로 돌아갔다 한창 작업 중이던 도둑이 칼을 휘둘러 부상을 입은 얘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자 얘기 . 한국의 여름 피서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일들이 이곳에서도 예외없이 벌어지고 있단 얘기다. 

이런 걸 감안하면 역시 여행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는 것이 상책인 것도 같다.
 





한국인 여행자와의 조우

딱 추석날 오후였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한국인 배낭여행객 2명과 마주쳤다. 배낭을 나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금방 도착해서는 숙소를 찾아 가는 것 같았다. 워낙 오랜만에 보는 한국인이라 아주 반갑게 인사 했는데, 여독 때문인지 낯선 이에 대한 경계 때문인지 (여자 2명이었다) 이들의 반응이 신통찮다.
 

몇 시간 뒤 이들을 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봤다는 것. 아마도 여행 책자에 소개된 곳이라 들른 것 같은데, 안타까웠다. 리아와 내가 직접 먹어 본 결과 영 아니올씨다였기 때문. 진작에 알았으면 알려주었을 텐데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여행책자에 소개된 식당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더러, 이마저도 소개될 만한 수준인지 의문이 가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넷 후기를 봐도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더러 있고.
 

외국에서도 맛집을 찾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손님이 얼마나 많은가라고는 하는데, 시기를 많이 타는 관광지에서라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 열심히 인터넷 발품을 풀거나 믿을만한 현지인의 소개를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octocho@gmail.com





  1. 이 사진이 정말 작품 수준인데, 가 버렸다는... 남인도 여정 때 찍은 사진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노트북 하드포맷 한다고 파일을 이동형 하드에 저장했는데, 막상 이 기사 정리한다고 찾아보니 안 보이는 거다. 진짜 눈물 난다. 복구 프로그램 10여 차례 돌렸는데 결국 안 뜨더라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