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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21. 시판돈의 매력 본격 탐구


4천 개의 섬이 있다는 시판돈(Si Phan Don)을 구경하려면 배가 있어야 한다. 뿌연 메콩강 물 사이로 자동차 차체에 묻은 흙탕물처럼 튀어나온 크고 작은 섬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인남 마이크가 이 일이 전문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눈부신 봄날 소풍을 가다

12월 13일. 한국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시기. 그러나 건기의 정점에 달하는 라오스에서는 초가을 날씨. 분팁 게스트하우스 일행 5명은 시판돈 섬 나들이에 나섰다. 하루 전 뭍으로 가서 필요한 물품도 미리 준비한 터였다. 마이크의 조그만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는 정확한 목적지 없이 시판돈의 이름 모를 섬으로 소풍을 떠났다. 요란한 모터 소리와 함께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조그만 무인도들이 셀 수 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원한 강바람이 따가운 햇살에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주었다.

마이크는 주변 설명을 해주었다. 시판돈은 기본적으로 강수량에 따라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한다. 우기에 내린 비로 수위가 오르면 땅이 물에 잠기면서 무수한 섬이 나타난다. 그러다 건기가 시작하고 강물이 점점 줄어들면 섬은 다시 자그만 동산이 된다.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에서 바탐방(Battambang)으로 갈 때 페리를 타고 건넜던 톤레삽(Tonle Sap) 호수의 풍경이 겹쳐졌다.

섬의 개수를 결정짓는 것은 오로지 자연의 몫이다. 해마다 생길 수 있는 섬의 경우의 수가 많다 보니 사실 몇 개나 되는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열변을 토해내던 마이크는 “4천개가 아니라 1만개는 족히 넘는다”고 했다. 배 양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그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아 보였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뱃길을 헤쳐 나가던 마이크가 어느 순간 배를 멈췄다. 그러고는 앞쪽에 보이는 강변을 가리키며 ‘캄보디아 쪽’이란다. 배로 5분만 달리면 닿을 거리였다. 위성지도를 참고하니 양국의 국경은 캄보디아에 좀 더 가까이 자리해 있었다. “이곳 지리를 잘 모르고 배를 몰다가 국경을 넘다 경찰에게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마이크의 얘기.



◆임자 없는 땅엔 새 발자국만

소풍 장소로 적당한 섬을 찾는 중에 본 섬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른 걸음으로 열 발자국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것부터 섬 일주에 한나절은 거뜬히 걸릴 만한 큰 것도 있었다. 물 위로 간신히 잔가지만 나온 섬과 제법 굵은 나무가 솟은 섬이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구경삼아 오른 섬 강변에는 새 발자국만 정신없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곳의 주인은 날갯짓하는 이들이었다.

한참을 달린 후 적당한 장소를 잡았다. 꽤 널찍한데다 그늘까지 있어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섬에 올라서는 가장 먼저 불 지필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바나나 잎에 싼 생선을 올려 놓았다. 소풍 올 때마다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주메뉴였다.

생선이 익는 동안 이날 남자친구와 함께 조수로 나선 조이(11세 여아)는 다른 식사준비를 했다. 양배추에 토마토, 삶은 감자 등을 넣고 버무린 샐러드가 나왔다. 구운 바게트빵에 넣어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다. 과일도 썰어 내놓았다. 그러는 사이 완성된 생선요리. 바나나 잎 덕인지 기름기가 쭉 빠진 것이 입안에 넣으니 두툼한 살이 그냥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양념 없이 담백한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였다면 분명 매콤달콤한 맛이 가미되지 않았을까? 언감생신!



◆환상적인 낙조로 마무리

마이크 따라 ‘비어 라오’(라오스의 대표 맥주)에 타우린 음료를 타서 마셔도 보고, 따스한 햇살에 일광욕도 하는 동안 어느덧 떠날 채비를 할 때가 됐다. 돌아갈 때에도 시판돈의 매력은 끝나지 않았다. 서쪽 하늘의 낙조가 메콩강 수면에 비춰 자아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매우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이쪽 뱃길을 수백번, 수천번은 다녔을 마이크는 어느 시간, 어느 시점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아는 전문가 아니었던가? 돈뎃에서 열흘쯤 머물며 2차례 간 소풍 모두 마이크 덕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날의 재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주 진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동력선 뒤쪽에 매단 타이어 튜브에 서양애들이 타고 가고 있었다. 모두 한 손에는 맥주캔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재밌다고 서로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하는 것이 ‘웬만한 파티는 저리 가라’ 수준. 라오스 북부 방비엥(Vang Vieng)이란 곳에서 유명한 ‘튜빙(Tubing. 튜브를 타고 메콩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마음에 드는 가게에 들러 술을 마시는 놀이)’을 하는 중이었다. 물살이 빠르지 않으니 배 동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참, 대단한 젊음이다!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