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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8. ‘여행자의 천국’ 입성

라오스. 인도차이나 반도 3국 가운데 캄보디아나 베트남에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곳이다.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언어는 태국과 엇비슷한 나라. 유일하게 바다랑 접하지 않은 곳. 어떻게 보면 길게 뻗은 모양이 이탈리아를 닮은 라오스는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에게는 때 묻지 않은 청정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베트남-라오스 국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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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베트남 비포장 도로에서 붉은 빛 흙먼지를 일며 달리던 버스는 베트남-라오스 국경 구간에선 달랐다. 일부 짧은 구간이 비포장이긴 했지만 표면은 고른 편이라 크게 흔들리거나 먼지가 많이 일거나 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입국 때처럼 ‘1달러 찔러주기’도 없었다. 라오스 국경사무소에서 입국 신고를 작성하고 비자를 받는 일은 몇 분 만에 끝이 났다. 직업란이 있어 ‘기자(Journalist)’라고 적은 것이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버스에 동승한 스위스인들에게도 별 탈이 없었던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긴 하다. 30일짜리 비자를 신청하니 담당자는 ‘15일간 무비자’를 안내해주기까지 했다.

까다로워진 것이 있긴 하다. 베트남 쪽에서 출국신고를 하고 라오스 국경사무소로 넘어가기 전 검문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승객들은 모두 내려서 여권 검사를 맡아야 했는데, 몇몇 승객이 통과를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알아보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소수민족이 아니었을까 한다. 태국에서도 미얀마인의 국경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유야 어쨌든 라오스를 불과 몇 m 앞에 두고 타고 온 버스를 두고 왔던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라오스의 첫 관문, 국경사무소에 도착하니 뜻밖에 세련된 모습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듣기로는 베트남에선가 지어주었단다. 국경사무소에서 이어지는 도로도 외국에서 깔아주었다고 한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3국 중 가장 가난한 국가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해외 투자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베트남 HAGL 그룹의 대규모 농장이 위치해 있어 이러한 투자는 양측의 이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에서 맺어진 인연

여행 도중 만난 외국인 친구들에게 라오스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 ‘시 판 돈(Si Phan Don)’을 추천했다. 라오스 말로 ‘4천개의 섬’을 뜻하는 곳이다. 우기에 메콩강이 넘치면 강에 그만한 숫자의 섬이 생겨난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첫 목적지로 삼은 곳이다.

문제는 여기까지 가는 길이었다. 국경을 넘어 아타푸(Attapeu)로,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팍세(Pakse)로 가서는 다시 미니 버스를 타고 (배 타는 곳 지명 검색)에 도착한 뒤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꼬박 2박 3일이 걸렸다. 인도 이후로는 가장 먼 여정이었던 것 같다.




이 길고 지루한 여정엔 동반자가 있었다. 국경을 넘는 버스 안에서 만난 스위스인 마뉴엘(Manuel)과 마르코(Marko)였다. 1개월 휴가를 내서 인도차이나 3국을 여행 중인 친구들이었다. 베트남 중부 (출발 도시 확인)에서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유람을 한 뒤 라오스로 넘어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지 라이더(Easy Rider)’라고 불리는 이 관광 상품은 베트남을 찾는 젊은 여행객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미국의 유명 영화에서 이름을 땄다. 운전은 베트남인이 한다. 여정 동안 숙식을 함께 해결한다. 운전기사는 나름 가이드 역할도 하니 여행 방법으로 꽤 매력적이다. 마르코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빠르게 지나치는 녹색 풍경에 오토바이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

꼬박 12시간쯤 달려 아타푸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저문 상태, 마뉴엘이 들고 온 스위스판 가이드북을 참조해 숙소를 정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마을이라 애를 먹긴 했지만 더듬더듬 말을 나누며 자신의 트럭으로 직접 데려다 주기까지 한 라오스인의 도움이 있어 쉽게 해결이 됐다.






마뉴엘과 마르코는 참 성격이 좋은 친구들이었다.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는 능력이 있었다. 이날 저녁 식사 뒤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의 라오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간단히 단어 몇 개를 겨우 나열하는 것 같은데 조금 있다 보니 어느새 농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사진까지 같이 찍는 사이가 됐다. 서로 얼마나 이해했는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얼콰하게 취한 라오스 남자의 어찌 보면 주사 같은 행동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것을 보면 유럽인 특유의 열린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각주:1]

라오스 입경은 이런저런 곡절로 인해 쉽지 않았지만 두 사람과 함께 여행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경험으로 먼저 시작했다.

octocho@gmail.com






  1. 어쩌다 보니 연락처 하나 주고받지 않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