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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5. 아시아 국가의 여성


이달 초,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 배우 수애가 방글라데시 자원봉사 활동 현장에서 흘린 눈물이 방영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노동은 물론 결혼을 강요당하는 방글라데시 소녀들의 현실을 목격하고 난 뒤였다. 1년여의 아시아 유랑 중 가장 많이 생각해본 주제가 ‘아시아 여성과 인권’인지라 크게 와 닿은 장면이었다.

- 인도의 신문에 게재된 신부 구함 광고. 출신 카스트별로 구분까지 돼 있다. 불행의 근원이다.

 

 

◆죽음의 공포에 떨다

이달 초순 인도의 한 10대 소녀가 결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오빠에게 구타를 당한 뒤 산 채로 불타 죽임을 당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알려졌다. 인도 여행 중 자주 접했던 이른바 ‘명예살인’의 한 단면이다.

인도 신문에 심심찮게 게재가 된 이런 유형의 범죄는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눈이 맞아 달아난 10대 커플을 찾아내서는 총으로 쏴 죽였다. 총 대신 칼을 이용해 손목을 절단하고 죽이는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다. 당사자 대신 부모나 친척이 화를 입기도 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법원에 경찰의 보호를 탄원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지참금(dowry)’ 문제 때문에 신랑 가족에게 살해되는 여성의 수도 1996년 5천500여 명, 2002년 7천여 명에 이르는 등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각주:1]

이들 사례의 공통점이라면 신부측 가족이나 친척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 딸이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할 경우 일가친척의 신분까지 천해진다고 믿는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결국 ‘여성 인권’과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눈 먼 결혼’의 희생양

같은 카스트, 아니 남자가 높은 카스트라도 결혼생활이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중매결혼이 대세이다. 연애결혼은 20% 수준이라는 말도 있다. 중매결혼도 당사자가 최종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식 당일까지 상대방 얼굴을 못 보고 말 그대로 ‘눈 먼 결혼’을 하는 일도 태반이다. 이런 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이런 경우에도 피해는 주로 여성의 몫이다. 무엇보다 시댁에 지참금을 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를 들고 가든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부를 내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인도의 관습이다. 가사 노동도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시골 지역에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것 때문일까? 인도에서 알게 된 친구들 집에 가서 결혼 사진을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사진 속에서 울음을 터트리지 않은 신부를 본 적이 없다. 슬픔 내지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바로는 중매결혼은 불행, 연애결혼은 행복이라는 등식이 거의 빗나가지 않았다.)

탄생 순간부터 불길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생매장을 당하고, 살더라도 출생신고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도의 여성이다. 대통령, 연방집권당 대표, 야당 대표 등 인도 전역에서 여성 정치인이 100만 명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하다.


- 결혼사진 속 인도 신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보인다. 전혀 낯선 사람 집에 식모살이 가는 기분,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 인도에서도 연애결혼의 경우는 느낌이 다르다. 쉼라(Shimla)에서 만난 부부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



 

◆억척스런 아시아 여성

이에 비해 동남아시아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법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여성이 설 자리는 상대적으로 넓어 보였다. 생활 현장 곳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공산국가라서 그런지 이들의 활동이 더욱 눈에 띄기도 했다. 태국은 불교국가로 보수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권이 많이 보장돼 있었다. 정치 분야는 물론 경제 부분에서도 여성들의 역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열대국가의 특성이 있어서인지 게으른 남편 때문에 생활전선에 나선 여성도 많았다. 가정 폭력과 불화로 시달리는 사례도 많았다. 이는 시골 지역, 가난한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태국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던 카오락(Khao Lak)이란 곳에서 만난 여성 택시기사는 ‘남편을 잘못 만나 가정폭력에 시달릴까봐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에 비해서는 매우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여성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일찌감치 배낭을 메고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서양의 여성들, 아니 한국이나 일본의 여성들과도 묘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었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octocho@gmail.com

 

  1. 인도에서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수천년 역사의 카스트 신분제, 더딘 의식 변화... 끝나지 않을 문제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