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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2. 국제도시 사이공으로

- 호치민시 가는 길.



지갑 분실 문제를 해결하느라 푸쿠옥(Phu Quoc)에 예상보다 오래 머물렀다. 함께 국경을 넘었던 독일 친구들은 물론 우리보다 늦게 온 프레드(노르웨이인)마저 벌써 섬을 떠난 뒤였다. 현금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호치민 시(옛 사이공)로 가는 비행기 표 예매부터 했다. 배를 타고 뭍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자본이 넘치는 호치민시

시간을 허비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비행기 여행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호치민 시에서 다시 만난 프레드 말로는 버스 타고 이동하는 여정은 “끔찍(horrible)했다”는 수준. 그럴 수밖에 없다. 호치민 시는 푸쿠옥 선착장까지 가서 배를 타고 2시간, 뭍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에는 무려 30여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아주 먼 곳’이었다.



호치민 시에 가서야 아시아가 사람이 많은 대륙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여행자 거리인 팜유어라오(Pham Nguo Lao)까지 가는 길. 버스 차창 밖을 보며 도로 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 특히 차량 사이 빈 공간을 빠짐없이 가득 채운 스쿠터족들. 나중에 퇴근 시간대에 이런 광경을 봤는데, 어둑어둑한 거리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 전조등 행렬은 일종의 조명쇼를 보는 듯했다.

- 배낭여행족들이 모이는 '팜유어라오(Pham Bguo Lao)' 거리에 있는 유흥업소의 간판이 이채롭다.




PNL 거리는 세계 배낭여행족을 위한 네트워크 기지였다. 이들을 위한 중저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했다. 그 사이는 여행사나 식당, 바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으로 손님을 유혹하는 곳. 도로에는 고속버스가 이들을 부지런히 싣고 내렸다. 베트남 전국,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이곳으로 몰려든 이들은 서로 만나고 각자 정보를 교환한다. 국제도시로서 이런 면모는 호치민 시에서 처음 목격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단체관광 버스를 보긴 했지만 이 정도 느낌은 아니었다.

호치민 시가 확실히 국제도시라는 사실은 거리를 조금만 걸어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 들어선 고층 건물. 그리고 신축공사 현장. 고급 호텔 체인은 물론 화려한 백화점 건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가게도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었다. 베트남 자본의 중심지라는 호치민 시. 중국처럼 공산당이 지배하는 베트남은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 호치민시의 야경은 화려하다.



재미있는 것은 베트남에는 아직 맥도날드 햄버거가 들어와 있지 않다는 사실. 캄보디아나 라오스도 마찬가지였다. KFC가 진출한 것을 보면 조금은 의외였다. ‘과거에 미국과 싸운 전력이 있어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도인 친구(경영 컨설턴트) 말로는 사실 맥도날드 투자 전략상 그렇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 가치가 있는 곳에 점포가 들어선다는 거다. 그런데 한 베트남 친구의 말로는 “맥도날드 점포가 조만간 들어설 예정”이란다. 논의가 진행 중인 모양이다.

- 호치민시의 매력 가운데 하나인 길거리 식당. 생선구이가 맛있어 보인다.



 

◆멋진 친구들과의 만남

대도시, 그것도 호치민 시처럼 외국인들의 주요 여행지에서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이용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설립 취지대로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과 친목을 쌓을 수 있다는 점. 푸쿠옥을 뜨기 전 숙소를 찾으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만나서 차 한 잔 하자는 베트남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카(Kha)라는 남자로 20대 초반의 의과대생이었다. 카우치 서핑 가입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미 수십 명에게 잠자리를 제공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위옛(Nguyet·여)이라는 베트남 친구와 아드리앙(Adrien)이란 프랑스 친구도 만났다. 첫 만남의 서먹임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재미있는 인물들이었다.

카는 너무나 자상하고 친절했다. 궁금한 걸 물으면 빠짐없이 답을 해줬다. 너무나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었다. 의대 생활 얘기를 들으니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빡센 공부와 시험의 연속, 그 와중에 과외로 용돈을 벌고, 카우치 서퍼들과 친목을 다졌다.

위옛은 체구는 작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아가씨였다. 친구를 사귀고 만나고, 클럽에 가서 춤추는 것을 즐기는 직장인. 그러나 위옛 자신은 보수적인 베트남 사회에서 조금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드리앙은 프로그램 전공을 끝내고 인턴십 차원에서 베트남을 찾았다고 했다. 전공도 살리고 외국 생활도 하고, 참 부러운 경우였다.

이들 3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1주일도 너무 짧았다. 첫날부터 맘이 맞아 술 한 잔 마시고는 호치민 시의 유명한 클럽도 방문했다. 유명한 포장마차 거리에서 맛난 베트남 음식도 함께 즐겼다.

- 호치민시에서 만난 카우치서퍼와 그 친구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한국 횟집을 간 날이었다. 한국식 날생선 요리를 먹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 그러나 이 친구들을 경악(!) 수준에 빠뜨린 건 낙지였다. 칼로 잘린 상태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낙지 다리. 아시아인(人)인 카나 위옛 조차도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서양인인 아드리앙은 오죽 했을까! 젓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입에 넣는데 온갖 인상을 다 부렸다. 입 안에서 꼬물거리는 느낌에 몸은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모두들 ‘맛있다’며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르쳐 준 대로 참기름 장에 꼭꼭 찍어서 말이다. (며칠 뒤, 아드리앙은 이 경험을 어머니한테 했다가 ‘야만인’ 취급 당했다 알려주었다.)

호치민 시에서는 대부분 이들과 함께 ‘논’ 기억 밖에 없다. 전쟁박물관을 들른 것을 제외하면 굳이 다닌 곳도 없다. 베트남전 때 쓰인 지하 굴이나 메콩 델타 여행상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 만에 들른 대도시의 재미를 최대한 즐겼다고 할까?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