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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1. 여행 중 닥친 위기 상황

- 문제의 배 '프엉 남'.

돌이켜 보면 1년 넘게 여행을 하는 동안 별 탈 없이 지냈다. 도둑을 맞거나 강도를 만난 것도 아니고 사기를 당한 적도 없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주 특별한 경험을 더 많이 했다. 적어도 푸쿠옥(Phu Quoc)에서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흔적 없이 사라진 지갑

지난해 11월 13일. 낚시와 스노클링 여행이 끝난 뒤였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인 싸오(Sao) 해변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음료수를 사 마시려 지갑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한참을 뒤적여도 지갑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이날 오전 처음 스노클링을 할 때였다. 사진을 찍고 난 뒤 탁자 위에 카메라를 놓았다. 이때 그 밑에다 지갑을 놔뒀다. 그 옆에는 안경도 함께. 그런데 스노클링이 끝나고 배로 돌아왔을 때였다. 탁자 위에는 카메라만 있었다. 안경이 급했던 나는 직원에게 물어 다른 방에서 안경을 찾았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그만 지갑의 존재에 대해 깜빡한 것이다. 가끔씩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기억력이 화근이었다. ‘2층에 놔둔 가방 안에 넣어 뒀겠지’ 하고 지레짐작하고서는 3번의 스노클링을 한껏 즐겼다.


- 손님을 상대한 책임자. 사건 발생을 알게 된 뒤 답답한 표정이 가득했다.




난감한 상황. 당장 담당 직원에게 부탁해 배를 뒤지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기대는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손님들이 대부분 유럽인이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었다. 내 경험이나 들은 바에 따르면 대부분 유럽 여행객들은 남의 물건에 손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배를 샅샅이 뒤졌지만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는 직원의 말. 갑자기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 마지막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까지 찾아가 봤지만 ‘역시나’ 사라진 지갑은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누가?’라는 의문. 베트남 직원이나 여행객이 1급 의심 대상이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 중에….

이날 마지막 사건은 러시아인들에 대해 근거 없는 적대 감정이 생기게 했다. 내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항구까지 다시 돌아간 길. 배를 뒤지고 있는데 러시아인 1명이 가이드에게 막 화를 내는 것이었다. “단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손님이 다 와야 했냐? (숙소로) 택시가 오기로 했는데 늦으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곤경에 처한 베트남 가이드 때문에 나도 괜히 무안해져 부랴부랴 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행 도중 들은 바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의 안하무인격 행동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 저 가운데 누군가?



- 아니면, 이 가운데?

 

◆피해 복구 ‘불가능’

지갑 분실의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현금도 제법 들었지만 이건 둘째 문제였다. 신용카드도 바로 분실신고를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바로 국제 현금카드. ATM 카드로 각 지역마다 현금을 인출해 사용했던 우리 부부에게 국제 현금 카드 분실은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분실신고를 하면서 콜센터 직원에게 문의를 하니 “재발급은 불가능”이라고 했다. ‘본인이 은행 창구에서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이 상당히 복잡해지게 됐다. 수중에는 따로 챙겨둔 현금 100달러뿐. 1주일도 버티기 힘든 액수였다. 결국 여행 7개월만에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현금은 친형에게 부탁해 해외송금을 받아서 급하게 해결했다. 현금카드 재발급 문제는 직장동료의 힘을 빌렸다. 그래도 직접 처리는 엄친이 은행에 가야만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5일간 우리는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피해 사례로만 들었던 해외여행 중 지갑 분실을 실제 겪고 나니 온몸에서 기운이 싹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나름 교훈도 얻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바로 확인하자’. 여행 책자 한 켠에 적혀 있긴 하지만 무시했던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주로 독일인이지만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고, 수중세계의 매력을 처음 접한 것 치고는 타격이 너무나 큰 하루였다. 그래도 그나마 여권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 이렇게 즐기기만 했다면....



 

▨해외에서 지갑·카드 분실시 생존법

해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일단 막막하다. 비상금 얼마라도 챙겨놓지 않았을 경우에는 염치 불구하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야만 한다. 이렇게라도 얼마간의 현금 사정이 생기면 여행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다.

먼저, 해외송금 전문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과 머니그램(MoneyGram) 등이 있다. 각 회사 사무소나 은행에서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나의 경우 웨스턴 유니언을 이용했다. 방법을 소개하자면, 한국의 송금인이 수신인과 수신은행과 주소와 함께 돈을 송금하면, 수신인이 특정한 웨스턴 유니언 사무소에 가서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수금하면 된다. 수수료는 계산해 보니 5%가 나왔다.

해외주재 한국대사관을 이용할 수도 있다. ‘신속 해외송금 지원제도’라는 것이다. 이용자가 영사콜센터를 통해 이를 신청한 뒤 한국의 송금인이 외교통상부가 특정한 농협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영사관에서 이를 수금인에게 지급하는 방법이다. 영사관 근처를 여행 중이라면 상당히 편하고 유용한 수단이다.

신용카드는 신고를 하면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서만 사용 가능한 ‘비상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불편하긴 해도 당장 급한 예약 건은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어떤 것보다 ‘예방이 최선’이다.

 

octo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