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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9. 베트남 가는 길



- 국경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으로 내다본 캄보디아 전원 풍경이 아름답다.


10명 남짓 승객을 실은 버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골 풍경. 논밭 가득한 비포장 흙길을 덜컹이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붉은 흙먼지가 차안으로 스며들었다. 국경 넘어 베트남으로 가는 길. 숱하게 겪었던 버스 여행, 웬지 모르게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여정이었다.

 

◆캄·베 국경을 넘다

켑(Kep)이나 캄폿(Kampot)은 캄보디아 남해안 쪽에서 베트남으로 가기 위한 거점 도시이다. 여행객들은 이곳을 거쳐 베트남으로 넘어 가거나 반대로 베트남 쪽에서 캄보디아로 들어오기도 한다.[각주:1]

베트남 국경과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주민들 중에도 베트남 인구가 많은 편[각주:2]이다. 당장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주인도 베트남-캄보디아 커플이었다. 인근 가게 주인이나 직원도 베트남인. 베트남 쌀국수 포장마차와 음식점도 있었다. 인터넷 카페의 기본 설정 홈페이지는 야후 캄보디아가 아닌 야후 베트남. 인터넷을 띄우면 크메르어가 아닌 베트남어가 튀어 나왔다. 휴대전화도 캄보디아 통신사 요금 충전은 못해도 베트남 회사 요금은 충전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교류가 많기 때문이다.

양국을 오가는 유동인구가 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 중이었다. 각 정거장에서 손님을 태운 뒤 국경 검문소에서 출입국 수속을 밟고는 정해진 목적지로 실어다 주는 식이다. 우리 호텔에서는 30m 거리에 있는 정거장을 기점으로 해서 두당 22달러에 예매 대행을 해주고 있었다.

-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오가는 국제버스 내부. 주중이라 그런지 승객이 많지는 않았다.



이 버스를 타고 우리의 목적지인 베트남 최대의 섬 ‘푸꿕(Phu Quoc)’까지 가는 길, ‘이런 식으로 여행 관련 사업이 창출해 내는 경제나 고용 효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듯 아직은 외국인을 ‘걸어 다니는 ATM’으로 보는 시각도 덜한 편이라 맘도 덜 불편하고 말이다. ‘한국에도 더 많은 서구 여행객들이 찾으면 좋을 것’[각주:3]이라는 것도 함께.

물론,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한(?) 방법도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국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모토’나 ‘툭툭’ 같은 오토바이 택시, 또는 승용 택시 등을 이용해 국경까지 갔다가 출입국 수속을 밟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용자의 불리한 상황을 이용해 요금을 과다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버스 시간이 맞지 않거나 불가피하게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는다면야 굳이 이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 여행객의 입장이다.

 

- 베트남 국경사무소에서 바라본 캄보디아. 베트남 국기가 달린 관문이 보인다. 그 너머 카지노가 이색적이다.

◆현장 수수료 1달러

베트남으로 가는 여정은 조금 긴장이 되면서도 흥미로웠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3면이 바다, 위로는 북한에 막힌 우리에게 해외 여행이란 비행기 아니면 배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육로 월경은 조금은 낯설긴 하지만 과정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먼저 버스가 캄보디아쪽 국경인 프렉 착(Prek Chak)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하면 승객들은 내려서 출국 수속을 한다. 출국 카드를 작성해 제출하고 도장을 받으면 끝이다. 그리고는 버스에 다시 올라서 국경을 넘은 뒤 베트남쪽 사 시아(Xa Xia)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도장을 받으면 모든 과정이 완료. 우리 그룹은 별 문제가 없던 관계로 전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캄보디아 국경 세관 내부.



다만, 국경사무소 관행(!)의 현장을 여기서 목격할 수 있었다. 여권 심사를 위해 여권을 제출할 때였다. 우리보다 몇 발짝 앞서 여권을 제출하는 서양인들이 1달러짜리 하나를 접어서는 여권 밑에다 붙여서 주는 것이었다.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에서 국경을 넘을 때 예외없이 지불해야 한다는 일종의 수수료.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지만 이를 내지 않으면 여권 심사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돈이다.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이의 불합리성을 한국대사관에도 따졌는데, ‘대사관에서도 베트남 정부에 항의해도 개선되지 않는다’며 ‘그냥 내고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성토하는 글을 올린 것을 읽은 적이 있다. 1달러를 내지 않으려고 버티던 한 영국인 여행자가 수십 시간을 붙들려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봤다는 얘기도 들었다.


- 베트남 하티엔 국경사무소 전경.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캄보디아 씨엠립 입국시의 운이 이곳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입국신고서에 직업을 적는 난도 보이지 않았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1달러를 냈다. 개인적으로 다행이라면 이후 베트남에서 라오스를 넘을 때엔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동남아 여행 수업료 치고는 그나마 싼 편이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리아가 담당 직원에게 ‘1달러의 용도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이 직원, 방금 전까지 잘하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거다. ‘그래도 자기들이 하는 일이 부끄러운 건 아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여행은 이렇게 시작부터 개운치 않은 경험과 함께 시작이 됐다.

 

octocho@gmail.com

  1. 버스에 자전거를 실은 것도 봤다. 인도차이나 반도나 태국 등지를 자전거 여행 다니는 외국인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본문으로]
  2. 그래서인지 영어는 서툴러도 프랑스어는 잘하는 현지인도 꽤 있다. [본문으로]
  3. 여행길에 만난 외국인 중에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았거나 그럴 계획이 있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한국 알리기'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듯.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