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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8. 캄보디아, 켑 & 토끼섬


캄보디아 비자 1개월[각주:1]. 국토 면적으로만 보면 그리 짧지 않은 기간. 그러나 느긋하게 여행을 하는 우리로서는 남들처럼 전국 일주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여행 책자의 3분의 1도 안될 정도의 ‘짧지만 강렬한 여정’을 끝낸 뒤 우리는 다음 목적지 베트남을 향해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캄보디아 남부의 휴양지 켑 해변.


◆과거 영화 여전한 휴양지 켑

캄보디아의 마지막 일정도 해변에서 끝났다.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다가 항상 그리웠던 집사람(리아)을 위해서는 필수 선택이었다.

택시를 대여해 4시간을 달려 캄보디아 최남단 켑(Kep)에 도착했다. 외국인 여행객 사이에 많이 알려진 곳 치고는 조용한 해안 마을. 켑은 최근에야 관광지로서 본격 개발에 눈을 뜬 곳이다.

켑 뒤편으로는 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프놈펜에서 만난 한국인 ‘프놈펜 난민’(의 말로 기억한다)에 따르면 “평지가 많은 캄보디아에서는 산이 있으면 무조건 좋은 관광지”. 캄보디아 남해 최대의 휴양도시 시하눅빌(Sihanoukville)[각주:2]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데다, 베트남 국경과도 가까이 있다. 그만큼 관광지로서 잠재력은 다 갖추고 있다는 얘기. 실제로 이곳은 프놈펜 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양지이다. 프놈펜~켑 구간 내내 보았던 도로 건설 현장은 바로 그 개발의 방증이었다.

켑 관광 개발은 사실 ‘재(再)’개발이라고 해야 한다. 켑 일대는 190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의 식민 휴양지로 개발이 시작된 곳. 이들 프랑스인은 물론 주변국의 돈 많은 사람들까지 가담, 일대에 프랑스식 장원과 별장 등을 지었다. 화려함을 뽐냈을 이 건물들은 크메르 루주 집권기부터 버려진 건물이 됐다. 집단적인 파괴 행위가 이어지다 보니 이젠 음산한 분위기만 살아있다. 주택 외벽에는 아직도 총탄이나 포탄 자국이 선명하기만 하다. 이제 이곳을 차지한 것은 건물을 무단 점유해 살고 있는 캄보디아인들. 문득 ‘과연 원주인이 나서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날이 올까?’ 궁금해졌다.

한때는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의 별장이었던 곳...


고의적인 파괴의 흔적이 가득하다.



켑은 특산물인 ‘게’와 ‘후추’로도 유명하다. 특히 두 지역 명물을 활용한 후추 양념 게 요리는 맛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해안 광장에서 매일 열리는 시장에선 인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게를 싼 값에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그 주변으로 들어선 식당에서는 이를 이용해 ‘황홀한 맛의 향연’을 제공한다. 프놈펜 썬의 소개로 들어간 식당, 매콤한 후추 양념에 아름답게 버무려진 삶은 게를 먹었다. 이날 먹은 요리는 우리에게 아직도 ‘여행 중 맛본 최고의 요리’로 꼽힌다.

 

 

 

 

 

 

◆전기도 인터넷도 없이
켑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20분쯤 가면 코 툰사이(Koh Thonsay)라는 섬이 나온다. 크메르어로 ‘토끼섬’이라는 곳이다. 한 여행책자 설명을 보니 섬 모양이 토끼를 닮아서 그렇단다. 면적이 불과 2㎢, 넉넉잡아 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이 섬은 외국 여행객들 사이에 최고의 휴식 장소로 꼽힌다. 그 이유는 이렇다.

겨우 20가구가 어업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는 송전시설이 없다. 전기는 해가 질 무렵 기름 발전기를 돌려 쓴다. 10시 이전에는 이마저도 끊어진다. 해뜰 무렵 전까지는 완벽한 암흑 세상. 사정이 이러니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첨단 장비는 구경도 못했다. 휴대전화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드라마 방영 시간은 동네 주민 모임 시간이다.



7가구인가가 운영하는 방갈로 숙소는 아주 기본적이다. 목조에 나뭇잎으로 엮어 올린 지붕. 2층 높이의 방 밑에선 가끔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물은 기대할 수가 없다. 화장실이 숙소 내에 있는 곳도 한쪽 수조에서 물을 떠다 부어야 용변 처리가 된다. 샤워 꼭지는 외국인 여행객들을 위해 겨우 장만해 놓은 듯한 기분. 그만큼 값도 싸다. 단돈 7달러.

이런 환경에서 여행객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자연 섭리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맑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한다.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다 땀이 나면 바다로 뛰어든다. 시원한 칵테일 한 잔에 책을 읽는다. 지난해 이곳 여행 기사를 쓴 한 언론사 기자는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린다고 표현했다. 볼거리, 즐길거리 위주의 여행을 다니는 한국인과는 많이 비교되는 행태. 씨엠립에서 만난 영국인 부부는 이 때문에 “캄보디아 관광산업은 태국보다 20년 뒤져있다”며 이곳을 우리에게 추천한 모양이다.

꼬 뚠사이 해변. 한가롭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여행지였다. 기사 마감 때문에 전기와 인터넷을 찾아 이틀 만에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찾을 때는 마음 편안히, 느긋하게 지내다 와야 할 곳이다. 약간의 미련과 추억 이후 우리는 조금 긴장되는 국경 넘기에 나섰다.

 

octocho@gmail.com

 

  1. 비자 면제 협정이 추진 중이라는데 과연 언제나 성사될지... [본문으로]
  2. 사실 배낭여행족들은 이 '환락의 동네'로 많이들 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