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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5. 다시 오른 유랑 길


오랜 만에 짐을 쌌다. 씨엠립에서 짐을 푼 지 2주. 다른 여행자들에 비해 꽤 긴 시간을 머물렀다. 다양한 사람- 걔 중엔 지뢰 제거 전문회사 대표로 있는 한국계 미국인도 있었다 -을 만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젠 캄보디아의 다른 면모를 들여다볼 차례였다.

 

◆길 나서니 고생길

다음 목적지는 캄보디아 제 2의 도시 바탐방(Battambang). 버스길과 뱃길이 있는데 우리는 폐리 여행의 낭만을 느껴 보겠다고 일부러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있었다.[각주:1]

문제는 숙소를 떠날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전날 밤 계산하면서 신청한 샌드위치를 직원이 깜빡 한 것이다. 이를 준비하는 새 픽업 버스가 왔는데, 우물쭈물하는 사이 가 버렸다. ‘걱정 말라’는 숙소에서는 대신 툭툭을 마련해 줬다. 근데 이게 100m를 채 못 가 시동이 꺼져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걸리지 않는 시동. 운전기사는 어딘가로 계속 전화를 하고, 불안한 우리는 영어로 뭐라고 해보지만 전혀 대화가 되질 않았다. 답답했지만 ‘기다리라’는 말에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SUV 차량 한 대가 와서는 우리를 실어다 날랐다.

근데, 이 차의 목적지가 선착장이 아니었다. 잠시 달리는가 싶더니 한 여행사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선착장까지 가는 거였다. 배 한 번 타기 위해 두 번이나 차를 갈아타야 하다니….

이런 일은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는 동안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도 정확한 여정에 대해 설명해 주는 곳은 없었다. ‘직행’이라는 답을 준 곳도 결국엔 어딘가에서 차를 갈아타야만 했다. 캄보디아 다른 지역은 물론 베트남이나 라오스, 태국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고생을 한 뒤 결국 ‘이 동네에서는 원래 이런 모양’이라며 나 자신이 적응해야만 했다. 리아는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는 서비스 상품이 분명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내가 잘 찾아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각주:2]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고행의 톤레삽 페리 여행

바탐방까지 톤레삽 호수를 페리로 건너는 내내 ‘이런 고생을 왜 사서 하나?’라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페리’라고 해봐야 웬만한 고기잡이 배를 승객용으로 개조한 것 같은데 6시간 탔으니 말이다. 딱딱한 나무 의자, 출발 1~2시간 후에는 앉아 있는 것조차 고역[각주:3]이었다. 버스 탔으면 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자꾸 후회감이 밀려 들었다.

그래도 톤레삽 페리 여행은 ‘한 번은 해볼 만한 모험’이다. 무엇보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수상촌을 따로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충분하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자연환경을 만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따가운 햇살과 수면 위로 비치는 구름, 엔진 소리에 놀라 날개를 퍼덕이는 새, 수면 위를 유영하는 물새떼,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멀뚱멀뚱 쳐다보는 소…. 시시때때로 변하는 풍경 하나하나가 장거리 여행의 지겨움을 보상해주었다.

특히 나무가 빽빽한 곳을 헤치고 나갈 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건기에 물이 없을 때 분명 허공이었을 곳을 유영하는 느낌, 리아 말대로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었다.[각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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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삽 페리 여행의 아름다운 풍경


 

◆바탐방에서의 짧은 일정

바탐방은 ‘캄보디아 제 2의 도시’라고 하기엔 한산한 분위기[각주:5]였다. 우리의 다음 방문국 베트남의 영사관이 있다는 사실 정도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 대나무 열차를 운전하는 꼬마 기사

바탐방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은 대나무 열차. 크메르어로 ‘노리’라고 하는 이 열차는 궤도 위에 대나무로 엮은 평상을 얹어 운행한다. 승객은 물론 화물 운송 수단으로 쓰이는 건데, 현재는 관광용으로 더욱 인기. 비록 경운기 엔진을 이용해 시속 30㎞ 정도로 달리긴 해도 바람을 가르며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각주:6]

 



단선 궤도를 달리는 이 열차가 운행 도중 반대쪽에서 오는 열차와 마주치면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된다. 어느 한쪽이 자리를 양보(!)하는데, 여기에도 기준이 있다고 한다. 승객이든 화물이든 적은 쪽, 그러니까 가벼운 쪽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사람이 다 내리면 기사들이 엔진이며 평상, 바퀴를 모두 내리고 다시 이를 재조립하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각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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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열차가 해체되자 출발하는 맞은 편 열차



바탐방 교외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크메르 루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킬링 케이브(Killing Cave)’가 있다. ‘사회 정화’라는 명분 아래 저지른 학살의 현장.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넘겨야겠다.

 

octocho@gmail.com

 

  1. 이거 말 그대로 '경험 삼아 한 번'이지, 두 번은 못 탈 것 같다. [본문으로]
  2. 태사랑 같은 곳에서 찾아 보니 이런 경험담이 많이 보였다. [본문으로]
  3. 승객들의 표정도 그만큼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이다. 차라리 떠나기 전날 늦게 자서 그냥 바닥에 누워버리면 나을 거다. [본문으로]
  4.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본문으로]
  5. 캄보디아 전체가 조용한 편이다. 그나마 프놈펜이 좀 붐비긴 하지만 한국의 대도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본문으로]
  6. 도착지에 가면 간이 매점이 몇 개 있는데, 순서대로 각 매점에 정차하는 것 같다. 기다리는 사이 벽돌 굽는 작업 과정도 지켜볼 수 있다. 가이드를 자처하는 꼬마 아이가 데리고 다니며 간단하게 설명도 하고는 용돈을 번다. [본문으로]
  7. 현재 건설 중인 태국과 이어지는 열차 공사가 끝나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다. 주요 관광 상품인데, 보존을 했으면 좋겠다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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