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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4. 물의 나라 캄보디아


- 씨엠립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거리 곳곳이 물로 가득하다.



비가 참 많이도 왔다. 씨엠립 공항 활주로도 전날 밤 내린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씨엠립에서 머문 2주간 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렸다. 느지막히 눈을 뜨면 창 밖에서 비가 오는 소리에 다시 눈을 감기를 계속, 우리의 씨엠립 생활은 마냥 길어지기만 했다. 우기의 끝자락이라 그런 건지 비 때문에 생긴 이 동네만의 독특한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 우기 끝자락 연이어 내린 비로 씨엠립 강이 흘러 넘쳤다.



◆물난리에도 행복 충만

밤새 장대비가 내린 다음날, 자전거를 타고 마실 나들이에 나섰다. 해는 이미 중천에서 기울기 시작한 시점. 동남아시아 최대의 담수호인 톤레삽(Tonle Sap)을 향해 남쪽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20분쯤 달리자 씨엠립 강 주변으로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다.

며칠간 꾸준히 내린 비로 강이 범람해 사방이 온통 물바다가 돼 있었다. 일부 지대가 낮은 곳은 이미 강물이 도로를 적시고 있던 터였다. 이를 뚫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량과 오토바이. 침수 당한 주변 건물에서는 흙 포대로 입구를 막고 양수기로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장판이 된 상황, 신이 난 것은 아이들이었다. 서너 살 됨직한 꼬맹이부터 초중학생까지, 서로에게 물을 튀겨댔다. 커다란 대야를 타고는 노를 젓는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일부 어른들까지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낚싯대와 어망을 들이대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실용족도 나타났다.

나를 포함한 이방인들은 아주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 가던 길을 멈춰 서서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이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물싸움에 동참, 일대는 일순간 물놀이 공원으로 급변했다. 억지로 자전거를 끌고 가던 리아와 나도 톤레삽 가는 것을 포기하고는 어느새 씨엠립의 전통놀이(?)에 뛰어들었다.

 

◆최대 명절도 우기 직후

몸은 어느새 흙탕물로 범벅이 됐지만 오랜만의 물놀이에 기분은 오히려 상쾌하기만 했다. 이는 해마다 5~10월 사이 우기 때마다 벌어지는 일. 캄보디아인들은 이미 이런 자연에 적응해 살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캄보디아는 특히 우기가 완전히 끝난 11월(캄보디아 음력으로 10월 보름쯤) 최고의 명절 행사로 물 축제인 ‘본 옴툭’을 벌인다. 이 시기는 물고기 잡이와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이기에 물의 신에게 감사하고 풍어를 기리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물 축제 최고의 행사는 배 경주. 수도인 프놈펜의 왕궁 앞에서 전국 예선을 거친 배 수백 척이 한꺼번에 경주를 벌인다. 이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 인구(1천 450만명)의 7분의 1정도가 프놈펜에 몰린다고 한다.[각주:1] 씨엠립에 있을 때 예선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짧은 거리를 힘껏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역동적이었다.


- 우기 끝 건기 시작을 알리는 물 축제 행사 때 열리는 배 경주에 쓰이는 배.



그런데 짧은 기간에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위험이 상존한다. 지난해 축제에서는 다리 위에서 축제 행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해산하는 과정에서 300여명이 압사하는 불상사가 생겨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베트남에 있을 때 이 소식을 들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크메르 루즈 시절 남편을 잃었고, 이번 사고로 외동아들을 잃었다’며 절규하는 모습에 가슴이 많이 아팠다.



- ‘망망대호(茫茫大湖)’ 톤레삽.


 

◆경이로운 톤레삽 호수

캄보디아가 ‘물의 나라’라는 사실은 톤레삽 호수를 돌아보면 실감할 수 있다. 크메르어 자체로 ‘거대한 호수’를 뜻하는 톤레삽은 건기에는 깊이가 1m가 겨우 넘는 수준. 그러나 우기에는 9m까지 깊어진다.[각주:2] 면적도 이에 따라 2천700㎢에서 1만6천㎢로 불어난다. 배를 타고 나가면 망망대해 같은 풍경이 나타날 정도로 넓은 호수(캄보디아 국토의 15%)로, 우기 때 넘치는 메콩강물을 받아들여 홍수 조절 기능도 담당한다.[각주:3]



- ‘망망대호(茫茫大湖)’ 톤레삽.



톤레삽이 단순히 ‘거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것은 이곳에서 수상촌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무려 2만명이 이 호수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호수 위에서 자고, 학교를 다니고, 절을 다니며 생활을 영위한다. 상점은 물론 경찰서 같은 관공서도 마찬가지.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유랑생활이 이어진다.

- 돈사까지 갖추고 톤레삽 호수를 떠다니는 수상 가옥.





- 수상촌 생활에서 배는 기본 교통 수단이다.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이들 단백질원의 70%를 차지한다)가 주수입원이기에 결코 풍족하지 않은 삶. 그래도 매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들이대는 카메라에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손을 흔들며 ‘헬로우’를 외치는 사람들이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 지친 이방인들은 이런 모습에 반하고, 이에 톤레삽 유람은 앙코르 와트 관광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인기 있는 여행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 고기잡이로 삶을 영위하는 수상촌 사람들.



 

- 한 모녀가 고기 비늘 손질을 하고 있다.

octocho@gmail.com

  1. 본선 참가팀의 식솔들까지 천막과 먹을 것을 챙겨들고 온단다. 이쯤 되면 정말 인파가 장관이겠다.이들을 위한 행사도 아주 다양하고 성대하게 치러지는데, 가수들 공연도 물론이겠다. [본문으로]
  2. 씨엠립에서 바탐방이나 프놈펜까지 페리가 운행된다. 호수 깊이에 따라 이 여정 시간 또한 크게 변한다. [본문으로]
  3. 메콩강을 따라 남지나해로 미쳐 빠져나가지 못하는 강물이 역류하면서 톤레삽 호수를 채운다. 건기가 시작하면 이게 줄어드는 것이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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