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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3. 신들의 도시를 거닐다




- 216개의 대형 두상으로 유명한 바욘 사원이 석양빛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앙코르 와트의 도시. ‘신들의 도시’로 불리는 이 유적을 보기 위해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씨엠립을 찾는다. 국민총생산(GNP)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캄보디아 자체가 ‘앙코르 와트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크메르 유적의 보고

거의 매일 내리는 비 때문에 며칠을 벼르고서야 찾은 앙코르 와트는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물’이라는 수식어보다는 ‘신들의 정원’이라는 별칭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와트(크메르어로 ‘절’이라는 뜻) 주변의 해자 뒤로 솟아오른 5개의 석탑을 비롯한 건물은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수백년 세월의 흔적을 담은 사원 안을 걷는 것 자체가 더 맘에 들었다. 앙코르 와트 내부는 멋스럽게 꾸며놓아 말 그대로 ‘정원’ 같은 느낌이라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 풍경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건물 곳곳에 새긴 부조(浮彫)를 보며 힌두교 신화를 확인하는 것도 묘미(앙코르 와트는 원래 힌두교 사원)였다. 힌두교의 본산 인도를 떠난 후에 다시 힌두교 유적지[각주:1]를 찾는 기분이 묘했다.


- 캄보디아의 대표 유적 앙코르 와트 입구 다리.



앙코르 와트의 강점은 또 있다. 관련 유적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사실 앙코르 고고학 공원(AAP·Angkor Archaeological Park)[각주:2]의 대표적 유적일 뿐이다. 씨엠립 중심가에서 북쪽에 위치한 AAP는 전체 부지 400㎢ 안 곳곳에 사원이 흩어져 있다. AAP 방문객들은 바욘(Bayon) 사원이나 반티 스레이(Banteay Srei), 프레아 칸(Preah Khan) 등의 유적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주된 이유는 ‘앙코르 와트보다 덜 붐비고 자연스러운 느낌’이라는 점이다. 일몰을 보는 곳으로 유명한 프놈 바켕(Phnom Bakheng)[각주:3]도 있다.

뚝뚝 타고 다니는 관광객들. 중국인들 같았다.



리아와 나는 초대형 두상(頭狀)으로 유명한 바욘 사원이 가장 맘에 들었다. 54개의 탑 4면마다 ‘관세음보살’을 자칭한 자야바르만 7세 왕의 미소를 담아 조각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바라본 216개의 미소상은 부처님 미소처럼 무언가 편안한 기운을 전해 주었다. 기우는 햇살에 비친 사원의 영적인 기운도 묘하기만 했다.

AAP는 유적도 유적이거니와 오가는 길에 우거진 삼림 자체도 매력적[각주:4]이다. 보통 뚝뚝(오토바이가 모는 교통수단)을 타고 많이 다니는데, 자전거 여행이 훨씬 더 멋스럽다. 길도 평탄해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가르다 보면 어느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앙코르 고고학 공원 내 도로. 길이 잘 꾸며져 있어 자전거 타고 달리기에도 괜찮다.



 

- 앙코르 톰 사원 내 도로. 길이 평탄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다.

 

◆폐허가 더 아름다운 유적

벵 메알리아(Beng Mealea). 크메르어로 ‘연꽃 호수’를 뜻하는 이 사원 유적은 이름부터가 역설적이다. 해자(垓字)에서 흐트러지게 핀다[각주:5]는 아름다운 연꽃과 달리 벵 메알리아 사원은 버려진 사원이다. 수 세기 동안 버려진 것이야 앙코르 와트와 다르지 않지만 현재는 정 반대의 신세.

사원은 멀리서부터 무너져 내린 흔적이 보였다. 무너진 구조물 곳곳엔 이끼가 잔뜩 끼어 온통 녹색빛. 그나마 성한 곳은 굳게 자란 나무가 뿌리와 가지로 한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방문객 안전을 위해 설치해 놓은 듯한 난간과 계단만이 사람의 흔적이었다.

벵 메알리아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 시절 군 주둔지로서 쓰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도굴꾼들의 손길을 받아 머리가 날아간 유물도 많다. 유물 복원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 손길을 내밀고 있는 캄보디아 현실을 감안하면 당분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폐허’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이 더 신비함으로 다가오는 까닭에 이방인의 발길을 더 끌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 온전한 부분이 별로 없는 벵 메알리아 사원.

- 풍파에 시달리고 목근에 점령당한 유적.

- 세월의 흔적으로 이끼가 가득 찬 유적.

 


벵 메알리아에는 10살도 채 안돼 보이는 꼬맹이들이 매일 죽치고 있다. 그리고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길을 안내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이드라도 되는 듯 유물에 대해 설명을 쭉 늘어놓는다. 들어보면 상당히 그럴 듯한 것이 오랫동안 연습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관광객이 떠날 때에는 은근히 팁을 요구한다. 노력이 가상해서 몇 달러씩 쥐어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냥 구걸[각주:6]하는 것보다야 좋아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란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애들은 학교에 안 간다. 돈을 벌면 벌수록 여기로 뛰어드는 애들은 더 많아진다. 그러면 부모들도 은근히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대신 돈을 벌러 내보내게 된다. 악순환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학교는 안 가느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는 수도인 프놈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octocho@gmail.com


- 앞에 가이드가 있음에도 따라오는 아이들. 방문객을 상대로 스스로 가이드 역할을 하고는 돈을 요구한다.



 

  1. 멋 옛날 인도, 확실히 하자면 남인도 왕국의 치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문자까지도 영향을 받은 터라 꼬부랑 글자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 수준이다. [본문으로]
  2. 다 둘러 보려면 며칠 걸린다. 그래서 표도 1일권/3일권/?일권이 있다. 자기 일정에 맞춰 사면 되겠다. 가격은 20달러/30달러/?0달러인가? 기억이 안 나서... ㅋ. [본문으로]
  3. 해질 무렵 관광객들이 떼거지로 몰려 든다. 유적이 그리 크지 않은데 탑 위로 사람이 워낙 많아 '밀려 떨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서쪽 연못쪽으로 해지는 풍경이 멋진데, 날씨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 유의해야 한다. [본문으로]
  4. 우리가 갔을 때는 우기 마지막이라 거의 매일 비가 왔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깨끗한 공기가 '쫄깃쫄깃'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5. 시기 맞춰 가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본문으로]
  6. 씨엠립 중심가 가면 수십 명이 활약 중이다. 이들에 대한 얘기는 후일에 설명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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