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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ochina Articles

14. 베트남의 다른 면모를 보다


‘남들 다 가는 곳은 일단 지양’. 확실한 일정이 없는 우리의 여정에서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보 얻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다른 경험을 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 아름다운 캄란의 풍경.

 

 

◆한적한 시골 마을 캄란

베트남 남부 해변 휴양지로 나짱(Nha Trang)이란 곳이 있다. 일찌감치 관광지로 개발된 곳으로 여행객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 그러나 우리가 주목한 곳은 나짱이 아니라 ‘캄란(Cam Ranh)이었다. 지도에 나짱 바로 밑에 조그맣게 표시된 것을 보고 어떤 곳인지 알아보니 관광객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각주:1]이라는 말에 선택했다.


- 베트남의 침대 버스. 관리 상태는 상당히 좋았다.



침대버스로 9시간(!)쯤 걸려 도착한 캄란은 소문대로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기분까지 들었다. 숙소 찾는 데도 고생을 좀 했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숙박 시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주민이 없어 더욱 힘들었다. 어렵사리 찾은 우체국 직원이 그나마 영어를 할 수 있어 겨우 호텔을 하나 잡았다. 가족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호텔이었는데, 이들의 영어 실력도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식당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식당 같아서 들어가 보면 술과 함께 간단한 안주만 파는 업소였다.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면 물어나 볼 텐데…. 30여분을 헤맨 우리에게 유일한 선택은 빈대떡(?) 집이었다. 반죽에 채소랑 고기 또는 생선을 넣어 세라믹 쟁반에 구운 것이 영락없는 빈대떡이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워야 했기에 먹었지만 바싹한 빈대떡이 연하게 씹히는 맛은 일품이었다. 비가 살짝 내리는 저녁이었던지라 동동주 한 사발 생각이 간절했지만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주린 배를 채우고는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큰길 따라 걷다가 도착한 마트. 영어로 ‘코-옵(Co-Op)’이라고 적은 것을 보니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진짜 ‘인파(人波)’라고 부를 만했다. 한산한 거리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광경.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인 듯한 느낌이었다. 어찌나 빼곡히 들어찼는지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계산대에서 만난 16세 남학생(캄란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베트남인이었다)의 얘기를 들으니 개장한 지 이틀이 돼서 그런 모양이었다. 2층에는 식당도 있었는데, 캄란에서 머무는 동안 끼니를 해결하는 장소로 애용했다. 물론, 이곳에서도 영어가 잘 안 통해 손짓 발짓으로 겨우 주문에 성공했지만 말이다.

캄란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알게 된 것인데, 월남전 때 파월 백마부대(? 확인할 것) 주둔지도 이 근처였다. 당시 파월 장병들이 그 잔인한 추억의 흔적을 찾아 방문한다는 사실도 함께.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경

하루는 스쿠터를 빌려 교외로 나섰다. 큰길에서 벗어나 달리니 시골길 달리는 맛이 제대로 났다. 물이 가득한 논, 녹음이 우거진 산. 낯선 외국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 하는 베트남 아이들.


- 캄란의 논, 혹은 밭?



간간이 내린 비로 막힌 길을 돌아가고, 질척이는 진흙길을 고생하며 넘어 도착한 부두에선 출렁이는 은빛 파도, 그리고 신선한 바다 냄새가 피로를 씻겨 주었다. 조그만 가게에서 먹은 화로구이 바게트빵 샌드위치는 산해진미가 따로 필요 없었다.


- 고엽제 피해 베트남인 돕기 활동을 하고 있는 쿠르트와 상 부부.



남으로 남으로 달려 다다른 해변. 인적이 없어 완전히 버려진 느낌의 이곳은 길이가 수 ㎞는 됨직해 보였다. 그 뒤로 들어선 천막집 하나. 이곳에서 푸른 눈의 서양인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쿠르트(Kurt)라는 이름의 덴마크 아저씨. 어부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쿠르트 아저씨는 베트남에서 한 여인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상(Sang)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온 친족을 데리고 영화관까지 가 봤다는 아저씨는 편한 생활을 버리고 이곳 해변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하는 일은 평범치 않았다.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즉 월남전 때 사용한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었다. 홈페이지(
www.agentorangevietnam.dk)도 운영하고 있었다.


- 캄란 남쪽의 '긴 해변'.




호치민시 전쟁추모관 -‘반미박물관’이란 별칭이 있다-에서 고엽제 피해로 기형이 된 아이들의 사진은 물론 태아의 박제까지 본 탓에 이들의 활동이 더욱 고귀하게 느껴졌다. (최근 국내에서도 고엽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생각이 났다.)

미미하나마 돕고자 몇 푼을 내미니 손님이라는 이유로 극구 사양했다. 처음 보는 이를 위해 커피에 과일 대접까지 하는 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을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업자가 당 간부를 설득해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후 부디 별일이 없었길 바란다. 그저 길을 따라 바다를 찾아 나선 길,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octocho@gmail.com

  1. 그만큼 정보 찾기는 쉽지 않다. 모험심 많은 외국인들이 올린 자료를 참조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