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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4. 전통을 지키며 사는 티베트인


맥클러드 간즈나 다람살라 등 인도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은 인도의 문화, 언어, 인종 다양성에 힘을 보탠다. 특히 달라이 라마를 정점으로 하는 티베트 불교와 관련, 아주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지금은 중국 땅이 돼 버린 ‘두고 온 땅’ 티베트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기에 맥간을 ‘작은 라사(티베트의 수도, 현재는 중국령 시짱 자치구의 성도)라고도 한다.

 

◆생활 곳곳에 스며든 티베트 불교

티베트인들에게 불교는 생활 종교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는 곳 어디를 가나 불교와 관련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오색(五色)으로 된 기도 깃발. 티베트어로 '룽타' 또는 '다르쵸'라고 하는 것으로 불교 경전 문구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삶과 운, 건강과 부 등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것이 달린 곳이면 티베트인 거주 지역이라고 할 만큼 마을 곳곳에 설치돼 있다.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리는 기세가 꽤 볼 만하다. 차량 실내장식으로도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티베트인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기도 깃발이 나부낀다.



‘코르’라고 하는 기도 바퀴도 쉽게 볼 수 있다. ‘옴마니파드메홈’이라는 불교 진언(眞言) 등을 새긴 것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며 돌리는 것이 수행의 한 방법이다. 어린애 장난감처럼 작게 만든 코르를 들고 다니며 수행하는 노인들도 있다.

-티베트 전통 공예술 보존/전수 기관인 노불링카에 설치된 불교 진언과 룽타.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논쟁하는 장면은 그 독특함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다. 2명의 승려가 서로 번갈아가며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이에 반박하는데, 서로 손바닥을 치고 발을 굴리며 내는 소리가 수십 m 밖에서도 들릴 정도. 매일 오후 비슷한 시각에 이런 소리가 들리길래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걸어 두는 것도 일반적이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적 인물인 달라이 라마가 맥간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다 보니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물론 인도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은행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 한 레스토랑에서는 메뉴판에 달라이 라마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문구를 적어 놓기도 했다.

-티베트인들은 가게 안에 항상 달라이 라마 사진을 걸어 놓고 매일 공양을 한다.



잃어버린 조국 티베트를 상징하는 티베트 국기도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히말라야 아래 도약하는 눈[雪] 사자 두 마리를 형상화한 기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조국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어 숙연해지는 부분이다. 사원마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수행하는 모습도 이채롭다.

-바람에 흩날리는 티베트 국기. 조국 수복에 대한 티베트인의 염원이 담겨 있다.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식당 안에서 본 티베트 국기. 왼쪽 위에 조그만 간디 사진이 인도에 있음을 대변해 준다

 


◆우리와 닮은, 순박한 그들의 모습

티베트인을 보면 누구나 ‘한국인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피부가 검다 뿐이지 영락없는 우리네 모습이다. 네팔 일부 지역이나 부탄 등 히말라야 인근 지역의 거주민들이 비슷한 얼굴을 한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연관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티베트인들의 문화도 우리와 유사한 것이 많다. 무엇보다 음식이 그런데, 다른 지역을 여행 하다 맥간에 와서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다는 한국인들이 많을 정도. 인도 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인도 가면 먹기 위해 맥간에 가겠다’는 식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몇 가지 소개를 하자면, 우선 뚝빠는 우리네 칼국수와 비슷하고 뗀뚝은 수제비처럼 생겼다. 맛이나 내용물은 조금 다르지만 나름 시원한 국물이 밥맛이 없을 때 후루룩 마시기에 괜찮다. 일부 애주가는 해장국으로 애용하기도 한단다. 미숫가루처럼 생긴 삼빠도 있다. 청포묵처럼 생긴 라핑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과 같은 ‘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한 날은 단골 카페에 있는데 리아가 속이 너무 안 좋았다. 몇 번 물갈이로 고생을 한 터라 어쩔까 고민하는데 직원 모두가 같이 걱정을 하는 거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면서 ‘병원에 가 봐야 하지 않느냐?’ 등을 물어 보더니 급기야는 ‘내일 아침 일찍 오토바이로 데려다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면식이 있던 한 직원의 어머니까지 동참해 리아의 건강을 걱정했다. 느끼하기로 소문난 인도 남자와 달리 순박하기까지 한 티베트인을 만나 본 한국인 치고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모습도 영락없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더 컵’이라는 영화에서 보여 주었듯 일반인은 물론 승려들도 조기 축구를 즐기는 것이 바로 티베트인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한국인과 외모가 많이 닮았다. 지난해 발생한 시짱 지구 지진 희생자들을 기리는 거리 행진. 지진으로 달라이 라마의 고향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한국인과 외모가 많이 닮았다. 지난해 발생한 시짱 지구 지진 희생자들을 기리는 거리 행진. 지진으로 달라이 라마의 고향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다.

 

◆수모의 피난사와 전통 보존

티베트의 현대사는 수모의 역사이다.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봉건영주로부터 농노를 해방시킨다’는 명분 아래 티베트를 침공, 강제 병합했다. ‘이전부터 중국의 영토였다’는 논리도 적용했다는데, ‘동북공정’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중국 정부의 행보 속에 1959년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지만 실패했다. 그런 직후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의 암살 위협 속에 인도로의 기나긴 망명길에 올랐다. 춥고 눈 덮인 척박한 땅, 히말라야를 건너는 대장정이었다. 지금도 숱한 티베트인들이 그 뒤를 이어 인도로 넘어오고 있다. 그 수가 10만명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이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도 망명 초기 한 잔의 짜이를 마시기 위해 금화 한 닢을 지불했다고 한다. 춥고 건조한 고지대에서 살다가 덥고 습한 인도 땅으로 온 뒤에 여러 가지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일단 인도로 왔다 다시 티베트 지역으로 갈 땐 국경 검문소에서 중국 공안으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여사라고 한다. 그래서 유난히 허리에 고질병을 달고 다니는 티베트인이 많다는 전언.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후로도 국경 문제를 둘러싸고 숱한 분쟁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긴장은 유지되고 있다. 맥간 곳곳에서 이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접했다. 그러고 나니 당시 네루 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망명을 받아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수난사 속에서도 티베트 망명 정부는 고유의 문화 보존에 노력을 기울였다. 티베트 언어로 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각종 전통 관련 기관을 설립했다.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는 전통춤 연구·보존을 맡은 TIPA(Tibetan Institute of Performing Arts), 기록문화·예술 기관인 LTWA(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ves), 전통 공예술 보존·전수 기관인 노불링카(Norbulinka), 티베트 전통 의술과 점성술을 담당하는 멘치캉(Meen-chee-khang) 등이 있다.

-맥간 아래 다람살라에 위치한 네충 사원. 티베트 불교 신탁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노력 덕택에 맥간이나 다람살라 전역에서 티베트 고유의 전통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와 의술, 점성술 등에 매료돼 이를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도 상당수일 정도로 이들의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자금 부족 때문인지 고문서나 문화재 보관 시설이 너무나 열악해 보여 매우 안타까웠다.

octocho@gmail.com

octocho.tistory.com

참고로,
건조한 고원 지방에서 살던 티베트인들은
인도의 습하고 서늘한 기운에 노출된 뒤 병을 잘 앓는다고 한다.
다사에는 티베트 델레 병원이라는 제법 괜찮은 종합병원이 운영 중이지만,
운영 예산이 적어서 최고의 상태로 운영 중이지는 않단다.
진료비나 약제비가 우리 기준으로는 싸지만,
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가난한 티베트인들도 많다고 한다.

-티베트 델레 병원 로비에 걸려 있는 사진. 병원 건립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주인도 대사로 보인다.



-티베트 델레 병원의 접수부/수약부. 간디 사진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