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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1. 아(亞)대륙에 첫발을 내딛다

(게으름과 주화입게임으로 인해 정리가 너무 늦었네요. 결국 기사 정리하면서 여행기를 바른 순서고 쓰게 됐군요. 격주로 수요일 17면, 매일신문에 연재되는 글, 게재되는 대로 올리도록 합니다.)

4월말 밤에 느끼는 열기. 까무잡잡한 피부. 온몸을 둘러싸는 복장.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몰리는 시선.

2010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지 약 14시간. 드디어 머나먼 천축국, 인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인디라간디 국제공항 밖을 나서니 인파 사이로 아주 자연스레 자리하고 누운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인도의 독특한 면모는 이처럼 공항문을 나선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디라간디 국제공항 청사 밖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인도인들.


 

◆총알택시 타고 뉴델리 시내로

뉴델리 시내로 가는 길은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를 이용했다. 워낙 택시 요금 시비가 잦다 보니 인도 정부가 해결책으로 마련했다는 제도이다. 담당 부스에서 약정 요금(250루피. 1루피는 약 27원)을 주고 뉴델리 시내 전역에 가는 식으로 운영이 된다.

뉴델리까지 가는 도로의 밤풍경은 더욱 낯설었다. 밤하늘을 덮은 뿌연 먼지, 무언가를 태우면서 나는 매캐한 연기, 여기에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까지…. 익숙지 않은 환경에 기침이 그치질 않았다. 약 6년 전 인도를 여행한 리아가 말한 그대로였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은 레이싱카 수준이었다. 트럭은 물론 승용차와 오토바이까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먼저 가겠다고 쉴새 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깜빡이’는 무용지물. 우리의 용맹(!)한 택시 기사는 그 사이를 헤집고 길을 만들어냈다. ‘총알택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조마조마한 가운데 택시는 어느새 목적지인 빠하르간즈(Pahar Ganj)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기사는 팁을 달라는 눈치로 손을 내밀었다. ‘뭔 소리냐?’고 손을 저어 보지만 웃으며 물러날 줄 모른다. 기가 차지만 그냥 50루피를 얹어줬다. 인도 어딜 가나 피할 수 없는 ‘인도식 흥정’이다.

 
◆성가신 호객꾼들

이젠 방을 잡을 차례. 빠하르간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 곳곳에 호텔이며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그런데 호텔 구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몇 개 호텔을 지나면 주택이 보이고, 주택 사이 골목길을 돌면 느닷없이 다시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은 샛길에도 호텔 간판이 보이고, 그 뒤쪽에는 다시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계획 없이 도시가 확장하다 보니 마구 뒤엉킨 모양이다.

미리 숙소를 알아보지 않은 까닭에 좀 헤매고 있는데 인도인이 자꾸 따라 붙었다. 호객꾼들이다. ‘괜찮다’고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찰거머리들. 어렵사리 두세 명을 떼어내니 갑자기 또 한 명이 얼굴을 들이민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싶다. 이번에는 제법 끈질기다. 몇 번이나 사절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보다 앞서 호텔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데리고 온 듯이 행세까지 하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다. 살펴보니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호객꾼이 한두 명이 아닌 듯하다. 몇 구역을 돌면 알아서 사라지는 것이 각자 영역도 있는 모양이다.

결국은 ‘속는 셈’치고 호객꾼이 이끄는 곳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변화 중인 도시 뉴델리

다음날. 대낮에 보니 골목마다 공사가 한창이다. 상·하수도관을 설치하거나 도로를 포장하고, 새 건물을 짓는 통에 도로가 엉망진창. 모래와 벽돌 등 건설 자재도 혼란을 더했다.

중국과 함께 대표적인 성장국가로 꼽히는 인도의 변화상일까? 리아도 “6년 전에 비해서 너무 많이 변했다”고 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소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자없는 개들만 여기저기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올해 개최하는 ‘커먼웰스 대회(the Commonwealth Games)’가 원인이란다. 영(英)연방국가 간 국제대회인데, 이를 위해 인도 정부가 뉴델리 곳곳을 정비하고 있단다.

리아는 “거지도 안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6년 전에는 어딜 가더라도 구걸하는 손길을 피해 다니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단다. 이후에 인도인들과 만날 기회가 생겨 물으니 인도의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일자리 증가가 배경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바닥 공사 중인 빠하르간즈. 현재는 더욱 심하다.

 

이것 저것 마구 뒤섞인 델리 시내.


 

◆뉴델리의 번화가, 코넛플레이스

늦잠으로 피곤함을 떨쳐내고 뉴델리 중심가인 코넛플레이스(Connaught Place)로 향했다. 이번에는 싸이클릭샤(Cycle Rickshaw)를 이용했다. 자전거를 개조해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나아가는 방식. 뒷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가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런데 나이 많은 아저씨가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운전하는 것을 보니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40루피인가 부르는 것을 20루피로 깎았다가 10루피를 얹어 주고서도 왠지 미안한 기분이다.(참고로 돌아올 때 탄 오토릭샤는 60루피)

코넛플레이스는 가운데 공원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로 돼 있다. 1931년 신도시 건설을 목적으로 설계됐는데, 아직 현대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 구역마다 적잖이 자리한 낡은 상점들은 금방이라도 문짝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보여 오래된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최근 속속 들어서고 있는 신식 고층건물과 대조를 이뤄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시장이 들어선 곳에 이르렀다. 옷가지와 공예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것이 한국의 5일장 분위기가 물씬 났다. 여기에 자리를 잡지 못한 잡화상들도 있는데, 모두 10살 안팎으로 보이는 소년들이다. 공원에 앉아 있으면 다가와 물품 구매를 유도하며 성가시게 했다. 한 구두닦이는 샌들을 신은 나에게도, 운동화를 신은 리아에게도 ‘구두 닦으라’는 시늉을 했다. 미안하지만 ‘노 쌩크스(No, thanks!)’.

인도 정부가 심각한 매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CNG 오토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원칙적으로 오토릭샤에는 미터계가 달려있는데 거의 무용지물이란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보니 미터계는 꺼진 채 뽀얗게 먼지만 앉아 있다. 이용객들은 목적지까지 요금을 미리 알아보고 흥정하는 것이 좋다. 해마다 나아지고 있다지만 어떻게든 바가지를 씌우려는 기사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미터기가 있긴 한데, 무용지물 수준이다. 특히 외국인한텐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