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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India Articles

2. 히말라야 자락으로 떠난 피서


원인은 더위였다. 악명 높은 델리(Delhi)의 여름 날씨. 특히 몬순(monsoon)을 앞둔 4~5월을 필두로 6월까지 40℃를 오르내리는 기온. 그 덕에 약 48시간 정도 뉴델리 일대를 돌아다니는 동안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느라 손수건은 항상 흠뻑 젖었다. 생수와 주스를 쉴 새 없이 들이켰지만 화장실 한 번 간 기억이 없다. 오후 10시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찬물도 미지근하기만 했다. 그래서 우린 일단 더위를 피해 멀리 북쪽으로 달아나기로 했다.

 

◆찌는 델리로부터 탈출 감행

대상지 정하는 것은 쉬웠다.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주에 있는 맥클러드 간즈(McLeod Ganj). 한국인들은 줄여서 ‘맥간’이라고 부른다. 티베트(Tibet) 망명 정부의 상징적 인물인 제14대 달라이 라마(His Holiness the 14th Dalai Lama)가 있는 이곳은 해발 1,800m에 위치한 탓에 여름에도 서늘한 편이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인들이 인도의 더위를 피해 찾았다는 곳이다. 한국인 여행객들도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도 한다.

델리에서 맥간으로 가는 길은 주로 버스가 이용된다. 무려 12시간이 걸리는 여정. 그러나 우리는 대신 기차를 타기로 했다. ‘버스보다는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셋째날, 열차 예약을 위해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역 앞은 그야말로 혼란의 극치였다. 도로를 가득 메운 승용차와 오토릭샤(autorickshaw) 사이로 오토바이(motorbike)는 물론 싸이클릭샤까지, 바퀴 달린 교통수단은 모두 길 위에 나선듯했다. 거기에 차로는 보이지도 않기에 마구 뒤엉켜 달리다 보니 그렇다. 까딱하다간 바로 접촉 사고가 날 상황인데, 결국엔 오토릭샤가 오토바이를 살짝 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일상이 된 모양인지, 양측 모두 언짢은 표정만 지은 채로 별다른 대응이 없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그냥 각자 갈 길을 간다. ‘이것도 인도식인가?’ 싶다.

역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1층 가득 인도인들이 진을 쳤다. 인도 전국 약 6만㎞의 노선에 촘촘히 들어선 7천100여개의 역 어딘가로 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다. (삭제 가능- 광활한 아대륙인만큼 인도에서 기차 여행은 대부분 장시간이다. 그러다 보면 대기시간이 엄청 길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상황을 대비 여행객용 편의시설을 설치해 두었다. 배낭 등 짐을 맡겨둘 수 있는 보관소[Cloak Room], 짧은 시간 머물 수 있도록 샤워와 숙박 시설을 갖춘 휴게소[Retiring Room] 등이다. 식당도 있다.) 그래도 기차표 예매는 ‘외국인’이라는 신분 덕에 2층에 마련된 전용 예약 사무소를 이용할 수 있었다. 뭄바이나 콜카타, 첸나이, 바라나시 등 주요 관광지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수십 m 줄을 선 인도인들을 뒤로 하고 2층 사무소로 올라가니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수요일 오전, 외국인 전용 예약 사무소는 너무나 한가했다. 세 무리 정도가 예약을 하고 있을 뿐이라 넓은 공간이 한층 더 넓어 보였다. 한 쪽에서는 젊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행선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역시, 어딜 가나 무리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을 만리 타향에서 보니 살짝 웃음이 났다.


잠시 대기한 뒤 창구에서 표 예약을 하는데 약사나 의사처럼 흰 가운을 차려 입은 직원이 갑자기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그 동안 한국인 여행객을 많이 상대하면서 몇 마디 배운 모양이다. 한국어 몇 마디를 곁들이며 가볍게 농담까지 던지는 덕에 아주 유쾌하게 예매를 끝냈다.

 

인도인들로 붐비는 매표소와 달리 한가한 외국인 전용 예매소.



◆열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우리의 열차 출발 시각은 오후 8시 30분쯤.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보슬비를 맞으며 역까지 걸었다. 그런데 역의 규모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수준. 우리 열차가 세워진 플랫폼까지 족히 50m는 넘게 걸은 것 같다. 어둠 속이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20개는 충분히 넘어 보이는 객차 사이에서 우리 객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참을 헤매고서야 겨우 올라탄 객차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도가 테러 위험이 상존하는 국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객실은 이미 승객으로 가득 찼다. 30, 40대는 물론 아이들, 노인에 여성들까지, 모든 종류의 인도인들이 다 탄 것 같았다. 객차 사이 공간이란 공간에는 입석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았을 정도로 기차는 인도인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공간이란 공간은 죄다 사람들이 자리잡았다. 시체 같이 누운 것은 경찰이다.



이방인을 응시하는 눈길을 받으며 자리를 잡았다. 에어컨 시설이 있는 나름 고급스런 침대칸이라 아주 편하게 갔다. 그러나 문제는 새벽에 발생했다. 목적지인 차키 뱅크(Chakki Bank) 도착 예정 시각이 오전 4시 25분. 오전 4시쯤 알람 소리에 맞춰 잠을 깼는데 안내방송이 없다. 새벽녘 어스름에 여기가 어딘지 도저히 감이 안 온다. ‘이걸 어쩌지?’ 하는 사이에 정차했던 열차는 출발해 버렸다. 그제야 잠을 깨서 하차 준비를 하는 인도인들을 붙들고 손짓 발짓으로 ‘차키 뱅크가 멀었느냐?’고 물어보지만 사람마다 답이 달랐다. 결국 “지나갔으니 이번 역에서 일단 내려라”는 한 승객의 말에 부리나케 짐을 챙겨서는 하차했다.

20여대의 객차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간이역. 지붕을 보니 ‘삼바(Samba)’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다람살라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라는 창구 직원의 안내에 따라 파탄콧(Patankot) 대신 차키 뱅크를 선택했는데, 괜한 짓이 돼 버렸다.


이른 새벽, 텅빈 삼바역에 내렸다



◆지겨운 버스 여행 끝에 목적지로
이후 맥간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지겨운 여정이었다. 역 직원에게 물은 뒤 오토릭샤를 타고는 지명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오토릭샤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튼다



오토릭샤 안에서 찰칵!


이때가 오전 7시 15분. 여기서 1시간쯤 기다리고서야 버스를 겨우 탈 수 있었다. 아직도 공사 중이라 비포장 길이 많은 도로를 덜컹거리는 버스로 달렸다. 파탄콧 버스터미널에서 잠시 대기를 하고는 다시 다람살라(Dharamsala)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로 치면 출근 시각, 버스는 승객들로 미어터졌지만 그나마 조용할 때 탄 덕에 계속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온갖 치장을 한 트럭이 지나간다.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소가 더 이채롭다.



'경적 울려주세요'. 안내문과 같이 인도에서는 모든 운전자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밤새 굶어 주린 배는 어느 작은 정류장에서 창 너머로 산 생오이(인도인들은 생오이에도 양념을 쳐서 먹는다. 아주 짜다)로 달랬다. 히말라야 산자락이라 이리저리 굽은 도로를 용맹한 버스 기사는 고속으로 잘만 달렸다. 굽은 길을 따라 달리고 달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한참 지난 12시 40분, 드디어 맥간으로 가는 입구인 다람살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맥간에 도착한 우리는 싼 숙소를 돌아볼 새도 없이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한 동안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긴 여정이 이어진다.

다람살라 도착 전에 들른 휴게소. 인도에서는 고속도로가 무료, 따라서 휴게소가 따로 자리한 것이 아닐 어디에나 위치해 있다.


다람살라 가는 길은 캉그라 밸리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으로 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