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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the World

DE] 독일 드라마 촬영 현장

 2013년 7월 1일.

 매주 월요일은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거리에 있는 오드와이어스 펍(O'Dwyer's Pub)에서 퀴즈가 있는 날이다.

 펍에서 4개 영역(상식/음악/그림/상식)에서 각 10개씩, 총 40개의 문제를 내고 손님들은 이를 맞추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득점이 많은 순으로 1~3등까지 경품을 준다. 수상팀은 정액권을 받거나 행운의 수레바퀴를 돌려 경품액을 튀기거나 꽝(!)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바로 저기다!


 이 날, 바로 이 퀴즈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로칼반호프역(Lokalbahnhof)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 건너편 인도 식당 주변에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로에는 소방차가 서 있고, 경찰의 경광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사람들도 한쪽 편에서 가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octocho. All Rights Reserved. (same below) 이곳에서도 '사진 찍지 말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찍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였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


'뭐하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펍으로 걸어갈 때 보았던 소방차가 기억이 났다. 오후 6시인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10시가 조금 넘은 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현장에 가까이 접근했다.

 길 건너편에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발견한 것은 방송용 카메라와 조명. 인도 식당 직원이 들것에 실려서는 구급차로 이동 중이었다.

 친구들이 구경꾼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드라마를 찍는 중이라는 대답이었다.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드라마 촬영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친구들 설명으로는 무슨 형사물이라고 했다. 인도 식당에서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조사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촬영 현장은 출연자와 스태프, 구경꾼들로 붐볐다.


 한 친구의 말로는 "6개월쯤 후에나 TV에 방영될 것"이라고 말했으니, 내가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도 딴 나라에서 드라마 촬영 현장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 아닌 기회가 생겼으니 나름 의미있는 밤이었다.


왼쪽에 관계자 몰래 찍느라 신경이 좀 쓰였다. 독일에선 뭐든지 까다로워서, 촬영 현장 사진 못 찍게 하는 것도 그냥 흘려 들어서는 곤란하긴 하다.


 여담을 하자면,

 촬영 현장을 떠나 전철역으로 가는데 짧은 횡단보도를 빨간 불에 건넌 직후, 밴 형태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순간 움찔했던 나와 2명의 친구는 그 자리에 섰다. 열린 창문으로 우릴 쳐다보던 경찰은 독일어로 뭔가를 묻더니 다시 영어로 무언가 말했다.[각주:1] 이젠 흐릿해진 기억으로는 "빨간 불에 길거리를 건너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각주:2] 물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우리의 말에 경찰은 그냥 주의만 주고 갔다. 다행이었다.

 근데, 마랴의 의문 제기.

"저 사람들, 진짜 경찰일까? 아니면 드라마 출연진일까?"

 촬영 현장 주변 교통정리를 위해 나온 진짜 경찰일 수도 있지만, 그냥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역들이 심심해서 경찰놀이를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왠지 그럴 것도 같은 얘기였다.

 여러모로 낯선 도시에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 밤이었다.

  1.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동양인인 내가 있어서인지 영어로도 물어보았다. [본문으로]
  2. 나중에 친구는 벌금 20유로인가 30유로만 내면 된다고 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