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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블로그 정리 때문에 옮겨 싣는 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Secret Life of Walter Mitty, The




 김세윤 작가가 시사iN에 기고한 글을 읽고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제목이나 예고편을 보면 진짜 '상상'을 '현실'로 만든 판타지 성향의 영화 같아서 '그닥'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런지 영화 보던 중 나간 관객이 몇 명 있었다.)


 이 영화는 1939년 발표된 단편작 '월터 미티의 비밀스런 삶'(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제임스 써버 작)을 각색했다. 1947년 이미 한 차례 영화[각주:1]로 만들어진 바 있다. (같은 해에는 라디오 드라마로도 방송이 됐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원작에 비해 1947년작도, 2013년작도 각색이 많이 된 편인데, 2013년작은 시도 때도 없는 몽상가인 주인공 설정 빼곤 완전히 다 바꾸고 시대에 맞게 재편성했다.


 LIFE, 월터의 인생

 이번 개봉작이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속 배경이 사진 전문지 '라이프(LIFE)'가 폐간하고 인터넷 전용으로 가는 과도기라는 점이다. '라이프'는 1936년 '잡지왕' 헨리 루스(Henry Luce)가 창간한 뒤 국제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며 보도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각주:2]했다. 로버트 카파(Robert Kapa)는 이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맞아 '라이프'는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 2007년 폐간되고 인터넷 세상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 사건 약 3주 전부터 주인공 월터 미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중대한 일들이 묘사된다.


 디지털 사진 시대에, 휴대전화도 없이 세상을 누비며 여전히 필름 카메라로 작업하는 작가 숀 오코넬(Sean O'Connell)을 16년간 전담한 월터도 정리 해고 당할 위기에 직면한다. 평생을 매달려 온 필름 보관실 일은 디지털 시대와 함께 막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비록 월터만이 아니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 그러나, 그 동안 답답한 일상에 매여 집과 직장 이외에는 가본 적이 없는 월터는, 이 과정에서 어쩌면 현재 직장에서의 마지막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월터는 자신이 '하지 않음'으로써 알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자신의 세계를 찾아간다.


 이는 사라진 '25번 필름'을 찾는 과정에서보다는,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이 필름이 실린 마지막 호 표지 사진[각주:3]과 제호에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 김세윤 작가가 6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출연해 말했듯이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도 나쁘지 않았다'는 또다른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월터가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면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의 직원과 전화로 나눈 대화를 듣다 보니 '내가 살아온 삶도 꽤 매력적'이라는 점을 느꼈다. 이렇게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거기에 대해 스스로 감사함을 느낄 관객이 꽤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외워두면 좋을 대사 가득[각주:4]

 원작의 모티브만 따서는 인생의 가치를 되돌아 보게끔 만드는 작품으로 각색을 한만큼, 영화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귀에 들어온다.


 먼저, '라이프'의 사훈으로 나오는 '세상과 앞으로 닥칠 위험한 것을 보고, 사물의 이면을 살피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서로를 발견하고, 또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가 있다.


 여자 주인공 셰릴이 말하는 "인생은 용기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듦에 관한 것"(Life is about courage and going into the unknown)도 있다.


 월터 미터가 천신만고 끝에 결국 숀 오코넬과 만났을 때 숀의 대사도 있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그리고, (외우질 못했는데) 기다리고 있는 눈 표범을 포착했을 때 "찍지 않아"(I don't (shoot))라면서 하는 독백의 내용[각주:5]도 있다.


 보는 내내 가슴이 시원해졌던, 내 인생에 대해 잠시나마 더 뜻있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준 영화였다.


 김세윤 작가는 영화평을 "고백하건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는 2시간이 요 근래 가장 행복한 2시간이었다. ‘늘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스스로 사진의 일부가 되어 서 있는’ 월터를 보며 8년 전의 남미 여행을 새삼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낯선 것들에 감탄하려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감동받으려고 떠나는’ 여행의 본질적 기쁨을 다시 그리워하게 만들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 단지 여행을 부추기고 모험을 응원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더 행복했다."며 마무리했다.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의 장엄한 풍경과 심혈을 기울여 선곡한 음악 등이 모두 마음에 든 꽤 잘 만든 추천작이다.

  1. 이 영화의 제작자 Samuel Goldwyn은 2013년작 제작자 중 한 명인 Samuel Goldwyn, Jr. 의 아버지이다. 손자인 John Goldwyn도 제작에 참여했다. 이 영화는 Samuel Goldwyn 프로덕션의 가족 프로젝트인 셈이다. [본문으로]
  2. http://ko.wikipedia.org/wiki/%EB%9D%BC%EC%9D%B4%ED%94%84_(%EC%9E%A1%EC%A7%80) [본문으로]
  3. 숀 오코넬이 그의 전담인 월터 미티를 위해 준비한 작품이다. 숀 오코넬 역을 맡은 숀 펜은 영화에서 그렇게 많이 출연하지는 않는데, 대단히 멋있게 묘사해 놨다. [본문으로]
  4. 'Quote's on http://www.imdb.com/title/tt0359950/trivia?tab=qt&ref_=tt_trv_qu [본문으로]
  5. "정말 아름다운 것은 찍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였다는군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neeilove&logNo=100202724269&categoryNo=74&parentCategoryNo=63&viewDate=¤tPage=&postListTopCurrentPage=&isAfterWrite=true [본문으로]